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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설악산 귀때기청봉(서북능선) 산행기 본문
귀때기청봉(1577.6 m) 산행기
일시 : 2009. 6. 6
날씨 : 산 밑은 맑음, 산중에는 운무와 안개비
함께한 사람 : 분당 산이좋은사람들 25명
산행지도 및 경로
장수대매표소(08:35) --> 대승폭포 --> 대승령(10:10) --> 1408.6봉(11:30)-점심-->귀때기청봉(오후2:20) -
-> 삼거리(3:30) --->한계령매표소(5:30) 순 산행시간 7시간
매 번, 이 곳 설악에 올 때면, 가슴부터 뛴다. 산행 중엔 늘 힘들어서 다시금 오려할까 생각하곤 했었는데
오늘, 어느 새 신발끈을 고쳐 묶고, 배낭을 추스려 등에 메는 나를 장수대탐방지원센터에서 발견한다.
함께 산행할 동지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아침 8시 35분, 산 입구에 들어섰다.
몇 해 전 있었던 수해 때문인지
들어서는 입구부터 계곡길 및
계곡바닥까지 잔돌과 큰 돌들로
말끔히 정비를 했다.
자연이 자연스럽지 못하니
절로 눈살이 찌푸려 지지만,
어쩌겠는가? 이 멋진 자연이
큰 비와 큰 물로 쓸려 없어지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애써 위안을 삼고 오른다.
<장수대 들머리>
.
입구를 지나 바로 나무로 만든 가파
른 계단이 시작되고 산 밑에서 본 앞 산
에는 윗 부분에 조금 구름이 걸쳐
있어서, 은근히 맑은 날씨를 기대
했건만, 오를수록 안개인지 구름인지
걷히질 않는다
그래도, 대승령 쯤이면 주변을 훤히
조망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걸고
거칠어지는 호흡을 달래면서
한 발, 두 발 올랐다.
어쩌면, 우리는 그 기대 혹은 바램으로
삶의 동력을 얻지는 않을까?
삼십 분... 오르기 시작해서 한 삼십여
분이 지나자 적당히 땀이 돌고 몸 또한
산에 오르기 적합하게 변환될 즈음
옛 문인화에서 봤음직한 폭포가 마치 하늘을 향해 박차오르는 용처럼, 혹은
하늘에서 뚝 떨어뜨린 비단처럼 암갈색
절벽에 걸쳐, 주변을 장악하고 있다.
시원스레 떨어지는 물줄기와 그 앞으로
탁 트인 조망, 거친 호흡을 고르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주변을 살피면서 여유를 가질 수 있는 곳이다.
수려하거나 장엄한 산에 꼭 회자되는 전설이 있듯이 이 곳, 대승폭포에도 전설이 깃들어 있다.
<대승폭포>
옛날 옛적에, 대승이란 총각이 살았는데, 지극히 효자였다고 한다.
그 대승이란 총각이 폭포 아래에 있는 약초(혹은 그에 상응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음)를 채취하고자 폭포
위 쪽에 줄을 묶고, 그 줄을 의지해 아래로 내려 갔댄다. 정신 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위 쪽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 급히 올라가 보니, 큰 지네가 줄을 갉아 먹고 있었댄다.
물론, 조금 지나면 줄은 끊어질테고, 당연히 목숨까지 잃겠지만, 효자불사인 전설은 대승을 돌봐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 틀림 없는 이야기 이다.
대승폭포에서 대승령으로 향하는 길은 어느 밀림
의 원시림을 보는 듯 하다. 그 많던 나무계단도
없고, 쭉쭉 뻗은 나무들, 여기 저기 수명을 다해
쓰러지거나 꺾여 있는 나무들..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 같아 그저 으쓱해 진다.
하지만, 막바로 다가오는 급한 경사면을 오르기
시작부터는 생각도 말도 잃었다.
단지, 앞 선 사람 뒷 선 사람 누구 할 것 없이
훅~ 훅~ 내 쉬고 들이 쉬는데 여념이 없다.
한 40여 분 올랐을까? 드디어 대승령이다.
몸에 남아 있는 물기가 없을 것만 같도록, 땀을
흠씬 흘려서 모자며 옷이며 다 젖었다.
하지만, 여전한 음주 탓인지 배를 누르면
여전히 출렁인다.
<대승령>
대승령에서 귀때기청봉에 이르는 길은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날씨만 좋다면, 좌우로 멀리까지 조망을 할 수 있으련만 여전히 구름인지 안개인지 아니면 비인지
우리의 기대를 떨쳐내고 줄기차게 에워싸고 있다.
인생이 다 그렇지 뭐__
어찌 나 좋은 것 다 볼 수 있노__
두 팔 두 다리 멀쩡해서 이렇게 여기까지
와서 호연지기도 기르고, 아니, 두 발 두
다리 모두 있어도 이 곳을 본 사람이 과연
몇 이나 될까?
그리보면 나는 행복한 것 아닌가..?
애써 위안을 하지만, 아쉽다.
그래서인지 내 동행에게 괜히 투정 아닌
투정도 하고 가벼운 시비도 걸어보지만,
짙은 운무만큼이나 마음이 개운치 않다.
그 나마 위안이라면,
저 멀리 교목 위 쪽에 제법 당당히 피어
있는 수국과 같은 이름을 알 수 없는 꽃.
가는 길 옆이나 바위 틈에서 청초하고도
화려하게 꽃을 가진 설앵초.
고산이지만 더욱 꼿꼿한 촛대승마(?)
이 곳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아주 귀한
세 잎 종덩굴 꽃 이 외에도 이름을 알 수
없지만, 나름 멋진 자태를 뽐내는 꽃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설앵초>
<촛대승마>
<세 잎 종덩굴>
<함박꽃>
어느 덧 체력은 바닥을 향해 가고, 허벅지 근육에서는 잔 경련이 일기 직전에 귀때기청봉을 오르는
입구 너덜바위지대에 도착했다. 나도 보면 금강산과 같다고 대청 소청에게 우기다기는 급기야
대청에게 귀때기를 맞았단다.
그래서 이름도 귀때기청봉이고
바위도 깨어져 이렇게 너덜거린다고 한다.
허 참__ 맞는 말일까?
맞지 않으면 또 어떨까?
이 모양과 상황에 맞는 이름과 이야기를
해학적으로 만든 우리 선조들 여유를
볼 수 있는 것만 해도 큰 소득인 것을__.
일설에는 대청이 정수리이고 중청 소청이
이마, 그리고 이 귀때기청이 귀 부분이라서
귀때기청봉이라 이름했다고도 한다.
암튼, 이 너덜지대에는 아직도 흔들거리는
돌들이 많아서 걷기가 수월치 않다.
발을 잘못디디면 숭숭 뚫린 트랙으로 발이
빠질 수 있고 그랬다가는 크게 다치기 쉽상
이어서 가급적 조심히 올라야 하는 구간이다.
귀때기청에서 삼거리에 이르는 길 역시 대부분 이 너덜지대이다. 이제는 하산을 생각하고 경솔히 내려오거나
음주를 하거나, 주의를 하지 않거나 하다가는 큰 낭패를 당할 것 같다.
장장 9시간의 장정이 한계령에서 끝을 맺었다.
한계령에는 가시거리가 10 여m 정도였고 안개비 자욱하여 한 동안 멍하니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우리 일행 중 여섯분(세 쌍의 부부)은 자신이 없다하여 한계령에서 귀때기청까지 원점회귀를 하셨다.
멍한 내게 전해 준 한 잔의 커피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 따스함과 진한 동료애 그리고 같이 못한 아쉬움이 그 한 잔의 커피에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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