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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월출산 노적봉 __ 시리봉과 왕인문화체험길 본문
2018년 3월 25일(일).
미세먼지가 지독히도 많은 날. 안개와 더불어서 가시거리를 확 줄였지만 아침 일찍부터 서두른 덕분에
이곳 영암 녹암마을에 오전 11시가 채 못되어 도착할 수 있었다.
이 마을엔 이미 봄기운으로 충만하다.
오늘도 자주 신세를 지는 산악회 MTR의 뒤를 쫓아서 어느 블로그 이웃님이 남기신 발자욱을 찾아볼 요량이다
오전 11시 10분. 대동저수지로 출발을 한다.
대동 저수지 둑길을 따라 난 이쁘게 정돈한 데크길을 걷다보니 마음이 절로 상쾌하게 정돈되어 지는 느낌이다.
저수지 위쪽으로는 능선이 쭈욱 이어진 마루금이 보이는데 아마도 이 능선이 시리봉 능선길이 아닌가 싶어진다.
저 산마루금이 물에 잠겨서 잔잔한 여운을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게도 미세먼지가 여러가지로 불편을 준다.
아니나 다를까
저수지 둑길이 끝나는 즈음에서 길은 나무난간의 작은 빈틈으로 나가 조금 전에 보았던 산 밑자락으로 숨어들었다.
어느 작은 야산의 그것 모양으로 식생을 보여주더니
급기야는 올 들어 처음으로 진달래꽃을 보여주고
덤으로 분명히 작년 가을에 맺었을 청미래나무 열매와 더불어
한참 물오르는 오리나무까지.. 자연 그 자체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그다지 험하지는 않지만 길은 꾸준히 오름질을 멈추지 않아서
흥건하게 땀으로 몸을 감싼 후에야 등에 올라 설 수 있었다.
우선은 저 앞쪽으로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범봉능선길이 보이고
발 아래로는 잘 생겼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바위가 보인다.
앞쪽으로는 가야할 능선길이 지루하지 않도록 군데군데 바위를 놓아두고 있고
그 왼쪽으로 멀리 천황봉이 그 조금 오른쪽 아래쪽으로 우리가거쳐야 할 구정봉(혹은 향로봉)이 보였지만...
미세먼지를 머금은 안개때문에 그저 뿌옇게 보이기만 한다.
드디어 눈 앞으로 시리봉(392m)이 보였다.
어디에서는 시루봉 또다른 어디에서는서리봉으로 기록되어 있던데.. 시리봉은 대체 어떤 의미를 간직한 걸까?
시리봉을 넘어서고 부터는 다양한 암릉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꼭 새 한마리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던지
기묘한 수석과 나무를 앉힌 것도 같고
혹은 언뜻 보기에 목을 움츠리고 있는 거북이 바위 라든지...
물고기 바위?
눈을 지긋이 감고 범봉능선을 지키는 그 무엇?
암튼, 바위들의 향연이 산성대 능선 못지 않다.
온 길을 뒤돌아 보니 저 뒤로 시리봉이 보이고 거기에서 보았던 새바위는 또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넓직한 주둥이를 가진 갈매기 모양이 저럴까?
이 바위는 꼭 구도하는 어느 영물의 느낌을 받는다.
그러고 보니 크고 신기한 바위를 보면 꼭 구도자의 느낌을 갖게되니... 나만 그런건가?
이제 큰 바위 뒤쪽 너머 너머로 노적봉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 거리가 있다.
가는데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일이 절로 벌어지는 경치들은 사뭇 음미하고 보내야 함이 옳다.
마치 신들의 산책인 양...
잔가지만으로도 바위를 둘러싼 나무들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온순한 모양으로
혹은 격렬히 저항하는 모습으로
때론, 금지의 시그널로
혹은 경이로운 풍광을 안내하는 모습으로 길에 발을 올려 장단을 맞추다 보니
어느새 노적봉(583m)이 다가왔다.
기쁜 마음으로 노적봉에 올라서서
미황재를 거쳐 향로봉, 구정봉으로 이르는 능선길을 눈으로 더듬 본다.
비록 안개가 시야를 가렸지만 그 강렬한 자태는 가리울 수 없는 것 같다.
뒤돌아 올라온 길을 바라보니
저 멀리 시리봉부터 이어져 오는 다양한 바위들의 모습이 괜스레 가슴으로 뿌듯하게 스며온다.
하지만... 하지만..
벌써 오후 3시가 다 되어간다... 구정봉으로 해서 큰골로 내려오기에는 시간이 모자른다.
에혀... 참 다행스럽게도
여유를 알 나이. 다음으로 미루고 과감하게 온 길로 뒤돌아 가기로 결정을 했다.
대신, 오기를 거부했던 길을 보란듯이 오르고
그 험난함을 뒤돌아 보며 즐기지만..
그에 대한 댓가는 분명히 따른다.
물론, 그 댓가로 울창한 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자신의 영역을 온몸으로 지키고 있는 곳을
팔 다리 여기저기에 퍼런 자욱을 남기게 하였지만, 얻은 결과에 비하면 아주 대수롭지가 않다.
또한, 뭔지 성스러운 존재감을 뿜어내던 이 바위.
원래대로라면 지나쳤을 이 바위 아래쪽에 있는 천년신비를 간직한 마애여래좌상을 볼 수 있었으니
되돌았음을 굳이 후회할 필요는 없다.
마애불이 있는 곳은 능선에서 약간 내려가는 길이라서 혹 큰골로 내려가는 길은 없을까 살펴보았지만..
더 이상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없어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서 시리봉에 올라 섰다.
뒤돌아섬이 어쩌면 아주 쬐그만 앙금이었을까?
시리봉에서 올라온 길이 아닌 왼쪽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여 우선 그 길을 잡아봤다.
호~~
이쁜 암릉이 아기자기 펼쳐진 것이 꼭 용화산 암릉길만 같았다. 웬지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길은 로프가 없이는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는 곳으로 향하더니
길인가봐 하는 느낌만 주고는 사라졌다.
가시에 찔리고 나뭇가지에 긇히고 아주 제대로 오지체험을 하면서 간신히 내려온 뒤에야 만난 월출산 둘레길
왕인문화체험길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게다가 푸른 싹이 돋아난 땅 위로 부드럽게 이어진 길은 보는 것만으로 안온함을 주었다.
대략 1.5km 정도 걸었나 보다.
대동저수지의 둑방길인 나무 데크길이 보인다.
어쩌면 천황봉에서 그대로 이어져 내려왔을 능선과 대동저수지가 아주 조화롭게 보인다.
현재시간 오후 5시 30분쯤. 시간만으론 6시간 40분의 산행을 마쳤다.
왕인문화체험길 1.5km 정도를 포함하여 약 8.5km 정도 걸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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