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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 __ 역사와 함께 있는 곳.

mangsan_TM 2020. 1. 21. 14:26




2020년 1월 20일(월)

정말 작정을 하고 남한산 산행을 했다. 무릎을 점검하고 올 산행의 정도를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남한산성 동문에 차를 주차하고

동문 -- 남문 -- 서문 -- 북문 -- 동장대 -- 남한산 -- 동장대 -- 동문. 약 8.4km 4시간 원점회귀를 했다.




동문 주차장. 예전엔 이곳에 주차를 하면 주차비를 냈었는데.. 언제부터 였을까?

무료 주차장으로 바뀌어 있다. ㅎㅎ 왠지 횡재한 기분이 든다.




무릎에 이상이 오면 언제든지 스틱을 사용할 작정으로 스틱을 배낭에 쟁이고,

성문 옆 길을 건너 남문 방향으로 산행을 시작한 시간은 오전 11시.




여지껏 긴 휴가를 방콕에서만 보냈더니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는데

성곽에 아직까지 쌓인 눈이 있어서 모처럼 겨울 기분을 가질 수 있었다.




고도를 높일 수록 뒤돌아 보여지는 돔문과 성곽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의 사찰도 당겨본다. 탑의 형태를 보니 아마도 망월사인 듯.




무릎이 또 다시 아파올지 모르니 조심스러울 밖에.. 그래서 서두르지 않고 넉넉한 걸음으로 오르고 있다.




11시 28분. 작지만 적당히 몸에 땀을 두르는 정도의 오름길 끝, 남장태터에 도착을 했다.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군사들의 지휘본부를 두었는데 그곳을 장대라고 하나보다.




그리고 남한산성 지도를 보니 세 개의 옹성이 쪼르르 있던데 그리고 차례로 제1, 제2, 제3남옹성이라 적혀 있고.

자료를 보니 제2남옹성의 규모가 큰 것을 보니 이 남장대 또한 제법 큰 규모였지 않았을까?




남문과 남장대는 그리 멀지 않았다.




남문. 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이 문으로 들어섰다고 기록되어 있던데..

그리고 정조가 증축을 하면서 지화문이라 명했다고 하던데.. 至和門 그 염원을 알것도 같다.

암튼 네 개의 성문 중 가장 큰 성문이고 




성남과 가장 큰 도로와 연결된 곳인 것 같다.




남문을 뒤로 하고 약간의 오름질을 하고 나니




봉우리 위에 팔각정이 있다.

영춘정이라.. 느낌상 迎春亭 같은데? 자료를 찾아보니 맞다. 天柱峰의 迎春亭 이랜다.




그 유래를 다 이해할 필요는 없고 다만 시야가 확 트이는 곳이니 봄맞이하기 적당한 곳인가 하고 지나갔다.




영춘정에서 부터 수어장대까지는 제법 까탈 스러운 오르막이지만




여기 길이 개인적으로 제일 멋져 보이는 곳이라 오르는 것이 그닥 힘들지 않다.




아주 싱싱한 소나무와 그 잎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특히, 싹이 움트고 초록이 여물어 갈 때 그 모습은 정말 멋진 곳이다. 물론, 이 겨울도 나쁘지 않지만..




12시 11분. 수어장대에 도착을 했다.




현존하는 유일한 장대인 수어장대. 서문 위에 있으니 서장대가 맞을 텐데..




수어장대라 함은 아마도 총사령관의 지휘본부가 맞겠지?




그리고 그 옆에 있는 조그만 누각. 무망루(無忘樓)




결코 잊지 않겠다는 다짐과도 같은 누각. 영조의 그 마음가짐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하다.

제발 지금 우리나라를 이끌고 있는 분들. 이리와서 이것을 읽어 보시고 사리사욕이 없는 부국강국에 힘 써 주시오.




수어장대를 나와 다시 성곽을 따라 걷는다.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여기 소나무들 참 멋지다. 잘 보존되어 후세까지 이어지길 기원하면서..




옛 잠실나루와 연결되는 서문에 왔다. 예전에 저 문으로 나가서




성 바깥길을 걸어 동장대까지 가곤 했었는데..




지금은 문화재 보호 차원으로 성 바깥길 통행을 금지 했다.




하지만, 이곳이 잠실 일대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곳이니 한 숨 정도는 돌리고




다시 서문으로 들어선다.

서문은 달리 우익문으로 불리던데.. 우측날개라면 주상의 위치가 북쪽을 등지고 생활하신다는 것이겠지?

그러니 당연히 동문은 좌익문이 될테고..




벌써 12시 37분이다.

요즘엔 일도 하지 않아서 아침을 거르곤 하는데 오늘 역시 그렇게 해서인지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가져온 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는 잠시 기다렸다가 맛난 점심을 15분 정도 즐긴 후,




연주봉옹성으로 향한다.




아까의 남옹성들도 암문으로 이어지더니만.. 이곳도 역시 이 5암문으로 이어지는군.




그런데 여기서 잠깐!!

몇번을 지나친 곳이 남한산성이고 이 암문인데.. 이 말은 처음 듣는다.

메탄터 즉, 숯 저장소. 자료를 읽어 보니 절로 끄덕여지는 고개짓.




이 연주봉 옹성을 올 때마다 느끼는 감정




와우~~  주변을 조망하기 제일 좋은 곳이라는 것. 




가끔씩 오르는 금암산 줄기는 물론, 멀리 아차산도 보이고




성 내외는 물론




하남 마방집에서부터 벌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와 그 뒤로 예봉산과 검단산까지 거침없이 조망이 된다.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암문으로 뒤돌아 와서는




예전처럼 성 바깥길을 걸을까 했는데..

이제는 확실히 알겠다. 이 바깥길을 분명히 줄입금지라는 것을




그래서 암문으로 다시 들어와 성곽을 따라서 북문으로 향하는데..

뭐지 저것은? 멋진 색깔의 파라솔 안쪽에는.. 막걸리잔이 오가고 있다.

쩝! 공원 내이든 산 속이든 음주는 안되는 것인데..




접근성이 좋아서인지 여기 산성 안에는




가족끼리 친구끼리 혹은 동료끼리 많은 사람들이 붐비는 곳인데 오늘은 평일이라선지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북문 가기전 잠시나마 오르는 곳에 올라섰더니 아니나 다를까? 북장대터가 나왔다.




성 밖을 잠시 내려다 보니 사람의 발길이 없어선지

성 바깥길이 눈을 운치있게 덮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내려서니 곧 북문이다.





북문. 남한산성 네 개의 성문 중 가장 아픔이 있는 문.




그래서 더는 지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면서 각인한 이름. 전승문.




그 결의를 뒤로 하면서 나는 어떤가?




생각이 생각을 물어도 그냥 흐르게 뒀다.

그랬더니 었 벌써 4암문.




아마도 암문들 중 바깥 지형이 가장 험한 곳을 꼽으라면




이곳이지 싶다. 그 암문을 나서면 아래쪽은 꽤 깊은 비탈이니까




동문에서 막바로 남한산을 오르면 금방 오르는데 그러지 않고 빙돌아서 남한산을 오르는 이유는

이 오르막을 오르고 싶었기 때문이다.




4암문부터 가파른 오름길을 오르다 보면 미쳐 빠지지 못한 땀을 뺄 수도 있고




뒤돌아 아찔한 높이를 감상할 수도 있기 때문인데




그 오름질을 동장대에 다다를 때까지 하다보면 몸이 재구성 되는 느낌도 오니까..

동장대에 오르기 전, 성 밖으로 나가는 문이 있는데 잠시 후에 이곳으로 다시 와야 한다.




동장대터.




가까이 봉암성과 한봉성이 있어서 누각이 한 번 소실된 이후부터는 상주한 군인이 없었다는 설명.




동장대에서는 외성인 봉암성과 한봉성으로 연결이 된다고 하던데..

성 밖을 보니 봉암성터가 아주 가까이 보인다.




다시 되돌아 잠시 내려와서 아까의 그 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왔다.




봉암성 안에 있는 벌봉을 향해 가다가 또 다른 작은문을 통과하고




뒤돌아 보니 동장대터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리고 있다.




갈림길. 왼쪽으론 벌봉을 거쳐 하남 마방집과 연결되는 길. 벌써 2년도 더 전에 하남에서 이곳으로 올랐었는데..

세월무상? ㅎㅎ 암튼 오른쪽 외성의 성곽을 따라서 간다.




앞 쪽으로 성곽의 흔적이 보이지만 오른쪽으로 좀 더 가서




그 성곽터에 올라섰다.




이 성곽은 남한산성의 외성인 봉암성의 성곽으로




멀리서부터 예봉산과 팔당 그리고 검단산까지 거침없이 조망이되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이 이 남한산의 진정한 으뜸 봉우리이기도 하다.

현재 시간 오후 2시 08분. 지금까지 세 시간 조금 넘은 산행이다.




다시 본성으로 들어서서




동장대 밑의 숲길로 들어섰다.

헉!! 잊고 있었던 사실. 무릎이 예전엔 어긋난 듯한 느낌이었다면 오늘은 제대로 맞춰진 듯한 느낌이다.




그래선지 여지껏 무픞이 아파오거나 이상신호도 보내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성곽을 왼쪽 옆에 두고 숲길을 걸어 내려가고 있다.




성곽을 쌓던 당시 충청도 출신 스님들이 묵으면서 수양하던 장경사에 도착을 했다.





종교도 나라가 위태로울 땐 이렇게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열심 했나본데





현재 우리의 모 종교의 지도자를 보면 사뭇 고개가 흔들어 진다. 자신이 믿는 그 절대자도 자신의 생각 밖에 있다면 국물도 없다고 말을 하니..




남한산장경사 일주문부터 포장도로라서 산길을 걷는 재미를 반감시켰지만




곧 한봉성의 한봉이 뻔히 보이는 곳에서 다시 성곽길을 만나 그곳을 걸을 수 있었다.

병자호란 청군들이 당시 조기 보이는 한봉 위에 포를 설치하고 성 안쪽으로 포탄을 쏘아대는 바람에 인조가 항복했다는 설도 있던데..

암튼 깊게 보면 온통 슬픈 이야기들..




이 성곽길 역시 품고 있는 이야기가 적지 않으니




황진이의 손길 역시 묻어있겠지. 이 표지석이 있는 성곽 그 너머로 고개를 내미니




볼품 없는 고사목과 바위가 보였다.

그 고사목이 대부송이고 그 바위 위에 송암정이 있었다고 하니. 다시한번 즐겁게 살기를 바라고 또 바래본다.




동문이 점차로 다가왔다.




맞구만. 국왕이 남쪽을 바라보면서 정사를 돌보니 그 동쪽이 왼쪽날개고 서쪽이 오른쪽날개가 되는 것이지.




오후 3시. 암튼 좌익문에서 만족스러운 웃음을 머금고 오늘 산행을 마친다.



얏호!!!  무릎이 안아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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