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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제천 조가리봉 __ 아직도 기상청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본문
2020년 9월 12일 새벽 4시. 알람소리에 눈을 부비적 거리면서 간신히 침대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거실로 나와 창을 열고 밖을 보는 순간 욕 한마디를 내 뱉었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예보가 되지 않았었는데.. 그래도 혹시 하는 마음에 충북 제천의 날씨를 검색하니
아침 6시부터 개인다고 되어있다. 그렇다면? 부랴부랴 짐을 챙겨서 제천 소재 능강교를 향했다.
능강교에서 소용아릉(산부인과바위) - 망덕봉 -금수산 - 신선봉 - 미인봉(저승봉) - 능강교.
오늘 예정하는 산길. 처음 가는 곳이라서 기대감에 빗길이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운전을 한다.
그런데, 아침 6시 30분에 도착한 제천 금월봉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이러면 안되는데..? 그래도 개인다고 했으니까.. 비가 그치길 기원하면서 천천히 능강교로 갔다.
능강교 도착. 아침 6시 40분! 여전히 비가 오고 있다. 그래 한시간 정도는 기다려 보지 뭐.
언제 그치는지 볼까? 폰을 꺼내서 검색을 하다가 다시 터져나오는 욕 때문에 입틀막!
뭐야~~ 두 시간 뒤도 예보를 못하는 거야? 왜 그러시나요? 아직도 기상청을 철썩 같이 믿는 나에게 이러시면 안되죠~~
멀리서 왔는데 그냥 되돌아가려니 너무도 억울하다.
소용아릉은 위험구간이 있다고 하니 빗길 산행은 무리가 맞을 것 같고, 자드락길이나 걸을까?
그래서 가볍게 자드락길 2코스(정방사길)를 걷기로 하고 우산 하나 들고 차를 나선다.
정방사와 얼음골 갈림길에서 정방사 방향으로
한동안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올라갔다.
비가 오는 날이고 차량이 없어선지 비록, 포장길이지만 걸을만 하다.
그런데 포장길 옆으로 숲으로 들어서는 길이 수시로 보였다. 그래서
숲으로 들어섰는데, 아마도 이 길이 자드락길인 모양이다.
이 길은 정방사로 가는 내내 수시로 계곡과 포장도로를 만나고 건너고 한다.
그런데, 어느 지점부터는 길이 고개를 치켜들고는
풍경도 그렇고 가파름도 그렇고 .. 여느 등산길 못지 않은 분위를 풍긴다.
이 나무데크길 역시 자드락길이라기 보다는 어느 산 위의 등로 같기만 하고
암튼 그렇게 꽤 높이 올라와서야
정방사와 만날 수 있었다.
큰 절벽에 기대어 선 정방사. 정갈하고 몹시 평안한 마음이 드는 첫 느낌.
각 기둥에 오언절구가 적혀있었는데 읽는 동안 마음이 몹시 공명한다.
問余何意棲碧山 어찌 이리 깊은 산속에서 사시는 거요?
笑而不答心自閑 단지 웃고 말았지만 마음은 그저 평안하다.
桃花流水杳然去 복숭아꽃 떨어져 계곡물 따라 흘러가니
別有天地非人間 이곳이야말로 인간세계가 아니로구나.
別有地의 어원이 되는 이백의 山中問答이 절로 흥얼거려 진다.
청풍강의 맑음에서 온 정, 금수산의 향기에서 온 방에서 따온 이름 정방사.
산신각을 내려오면서 바라본 금수산 자락은 운무에 가려 있어도 멋지기만 하다.
본당 뒷편으로 약수터도 있었지만 코로나의 악력으로 문이 닫혀 있다.
그리고 이 곳에선 뒷편을 제외하고는 시야가 훤히 트여있어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왼쪽으론 아침까지만 해도 오르려고 한 금수산 소용아릉능선이 구름과 숨바꼭질 중이고
앞쪽으론 청평호가 보였다. 맑은 날에는 월악산이 코 앞으로 다가온다고 하던데
오늘은 많은 구름들이 활공 중이라서 원경은 볼 수가 없다.
그런데.. 조가리봉이 여기서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은데.. 한참을 서성이다가
봉우리에 오르기로 했다. 구름이 벌써 코 앞으로 다가들고 있어서
서둘러 산으로 들어 선다.
빗방울은 약간 가늘어졌지만 구름의 농도는 짙어만 간다.
정방사 갈림길에 올라서고 조가리봉으로..
잠시 평탄한 능선길에서 지난주에 다녀왔던 동산 작은동산 능선을 볼 수 있었다.
앞쪽이 작은동산, 성봉 중봉과 동산은 구름속에 있고.. 그래도 다녀왔다고 반가운 마음이 드는군. ㅎㅎ
엇? 그런데 물기로 온몸을 칠하고 양 옆으로 제법 깊숙한 곳에 바닥을 둔 이 바위를 지나야 하는건가?
어느 정도 미끄러운지 알아볼 수도 없고.. 철푸덕 주저앉아 썰매타듯 내려섰다.
그리고 큰 바위가 조각조각 부서져서 만들어진 큰 돌조각들을 올라서고...
가만? 이 봉우리 이름이 조가리, 족가리 혹은 쪼가리봉이라 하던데.. 그럼 바위조가리에서 온 걸까?
잠시 뒤돌아 보니 구름이 이미 신선봉을 삼켜버렸다. 그래서 서둘러 오르니
곧 조가리봉이다. 누군가의 블로그에선
이 바위 틈에 정상석이 보이더구만, 오늘은 없다. 잠시 둘러본다.
오늘 예정대로라면 아직까지는 구름에 잠식 당하지 않은 신선봉 능선을 따라 내려와야 했을 텐데..
그리고 오늘 여전히 아쉬운 망덕봉 소용아릉 능선은 구름과 신나게 놀고 있다.
그것은 마치 한 마리 커다란 용이 구름을 희롱하는 듯한 모습이다.
그 모습이 장관이라서 오늘 가지 못한 서운한 마음을 열심히 위로하는 것만 같다.
잠시 멈췄던 빗방울이 다시 떨어진다. 그래서 서둘러 하산을 한다.
올라올 때 애먹이던 바위도 이번엔 가뿐히 올라 지나치고
이곳 바위들의 특징인 뭔가 표정이 있는 바위와도 가볍게 터치.
그렇지만 이미 이곳은 구름에 잠식된 상태. 그래서
정방사에 다시 내려왔을 때에는 빗줄기 제법 튼실해 졌다.
정방사 앞뜰에서 다시 한번 주위를 보고 싶었지만 빗줄기가 더 굵어지기 전에 서둘러 내려간다.
올라왔던 나무계단으로 다시 내려와
큰참나무숲을 지날 때, 오우~~ 한동안 발길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빗방울과 떡갈나무잎들이 보내는 연주를 놓칠 수는 없으니까.
이제 제법 많은 비가 내려서 숲길을 나와 시멘트 포장길로 나온다.
포장길을 비가 그리고 숲이 또 포장을 해서 걷는 것을 즐길 수 있었다.
다시 주차장에 왔다. 현재 시간 오전 9시 50분.
2시간 50분의 산행. 조가리봉도 해발 580 m 정도이니 왠만한 근교산행을 한 셈인가?
그렇게 위안을 삼으면서 집으로 출발을 했다.
12시가 가까와 지는 지금.
분당의 날씨는 멀리 있는 청계산이 분명하게 보일 정도로 좋아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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