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처럼

남한산 with F.B.I.(오형제)__ 생기엔 친구만큼 좋은게 없다. 본문

등산

남한산 with F.B.I.(오형제)__ 생기엔 친구만큼 좋은게 없다.

mangsan_TM 2020. 11. 8. 13:29

 

 

 

 

2020년 11월 7일. 고등학교 친구 5명과 함께 남한산성을 돌고 왔다.

남한산성 안내도

 

 

 

동문에 차를 두고 

동문 - 동장대터 - 남한산(서) - 북문 - 연주봉옹성 - 서문 - 남문- 개원사 - 동문

원점회귀를 했다.

 

 

 

 

보령에서 천안에서 그리고 가까운 안양과 서울에서 출발한 친구들을

이매에서 픽업해서 여기 동문 주차장에 왔다. 그리고

10시 다 돼서 동문을 올라 장경사로 향한다.

남한산성 동문

 

 

 

요 며칠 겨울날씨를 보여서 옷을 단디 여미고 왔건만 오늘은

춥지 않은 날씨다. 그것만이라면 좋을 텐데..

황사가 박무와 더불어 있어서 보는 즐거움을 가리고 있다.

 

 

 

 

장경사. 역사에 해박한 친구 T의 설명에 의하면 이 남한산성 내의 사찰은 거의가

나라에 난리가 났을 때 앞서서 그를 극복하고자 하는 호국불교였다고 한다.

장경사

 

 

 

 

종교 하나만 중시하기 보다는 국태민안을 생각하며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자 하는

사상이 내 마음엔 부드럽고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장경사 대웅전과 팔각구층석탑

 

 

 

장경사를 나와서 동장대터로 오르는 길.

황사만 없었더라도 옅은 안개와 나목들이 멋진 풍경을 만들텐데... 그래도

 

 

 

 

산을 오를수록 점차로 맑아지는 하늘이 희망을 준다.

한 50여 분을 올랐을까? 옛 동쪽군을 통솔하는 장군 막사가 있는 동장대터에 올랐다.

 

 

 

 

동장대터에선 외성인 봉암성과 한봉성으로 가는 길이 훤히 조망이 된다.

한봉에서 청군이 쏴대는 포에 대책이 없어 조선군이 무너졌다는 설도 있던데..

소설 "남한산성(김훈)"을 읽은 친구 T가 전해준 서늘하고도 스피디한 문구

- 적군은 서북풍처럼 내달려 왔다. -

그럼에도 조정에선 개인영달 혹은 집단 이기주의에 빠져서 말싸움질이나 하고 있었으니..

지금의 정치판이 그 어리석음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벌봉과 한봉으로 가는 성 밖의 길

 

 

 

동장대터에서 가던 길 잠깐 가다가 내려서서 외성으로 향하는 암문을 지났다.

아직은 겨울의 문턱인 늦가을의 길. 절로 감성이 돋는다.

 

 

 

 

그러니 아직까진 자칭 감성파인 내가 사진을 찍지 않을 수는 없지.

그 모습을 또 담아주는 친구 T.

 

 

 

성곽을 나와서 되돌아 바라보는 동장대터. 미학적으로도 손색이 없다.

 

 

 

 

어쩌면 낙엽을 떨구면서 나목이 되어가는 모습에 이제는 나도 정리할 시간인가? 자칫

우울해 할 수도 있는 시기이건만 나이가 먹어도 역시 고등학교 친구가 어디 갈까?

옛 그 시절처럼 탄생하는 장난이 우리에게 활력을 듬뿍 주고 있다.

 

 

 

 

늦가을 정취가 듬뿍 배인 길을

 

 

 

 

그 때 그시절의 이야기를 윤활유 삼아

 

 

 

 

거침없이 걷고 달려서 오늘의 첫 목표지인

 

 

 

 

남한산 서쪽 정상에 올라섰다.

 

 

 

 

그런데 지난 1월에 왔을 때만 해도 다소곳이 있던 정상석이 보이질 않는다.

멋지게 펼쳐 보였던 검단산의 모습처럼 오리무중.

 

 

 

 

현재시간 11시 5분. 햇볕들고 바람이 잦아든 곳에 자리를 펴고 간식타임.

이제 귀농을 해서 친구 J가 손수 지은 옥수수하고 각자 내놓은

감, 모시떡, 생강차, 커피 등등으로 

그런데 먹는데 집중하다보니 그것들을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것이 아쉽다.

 

 

 

 

다시 동장대터로 되돌아 가서

 

 

 

 

 

아마도 오늘 구간 중 가장 가팔랐을 돌계단을 내려서고

 

 

 

 

종종 성밖길을 걸을 때 드나들던 암문도 이번엔 그냥 지나쳤다.

왜냐하면 언제부턴가 성밖길을 차단했었다는 기억이 있었기 때문.

 

 

 

 

코로나가 사람들의 생활패턴을 확실히 변화시킨 것 같다.

삼삼오오 예전에 비해 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북문, 이곳에서 나가 춘궁동으로 가는 길도 참 예뻤었는데..

그 길을 걸었던 기억도 5년도 더 전의 것인 것 같다.

북문

 

 

 

 

그런데, 보수공사로 인해 서문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여기에서 걷기를 멈추기엔 아쉬움이 있어서 성 밖으로 나가 외곽길로 걷는다.

 

 

 

 

막혔다는 기억으로 한동안 걷지 않았던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지난 흔적이 뚜렷하다.

 

 

 

 

아무생각 없이 그져 걷기 좋은 길.

 

 

 

 

히말라야까지 다녀온 친구 M도 인정하는 안온한 길.

 

 

 

 

잘 나가던 사업에 한 번 혼쭐이 났어도 다시 순탄한 사업을 이어가는 친구 H가

말 대신에 전한 따스한 느낌을 전달 받으며 이 길을 행복하게 걷고 있다.

 

 

 

 

호~~ 이 녀석. 모레부터는 다시 영하의 날씨라고 하던데

겨울잠 잘 곳을 아직 찾지 못한거야? 서둘러 찾아 들어서야 할것 같은데?

산개구리

 

 

 

연주봉 옹성 가는 곳. 역시 내성으로 들어서는 암문은 막혀있고

 

 

 

 

그래도 연주봉에 왔으니 올라갔다 와야 예의겠지?

연주봉 옹성

 

 

 

여전히 성 밖을 걸어 간다. 오른쪽으로 서문과 마천역을 이어주는 길이 보이고 곧

 

 

 

 

서문에 도착을 했다. 성 안쪽은 어떤지 살펴보니 수어장대로 가는 길 역시 막혀 있다.

남한산성 서문

 

 

 

그래서 남문까지 성밖길을 계속 가기로 한다.

 

 

 

단풍시기엔 애기단풍의 화사함으로 유명한 성 안쪽길에는

공사로 한창 분주한 포크레인이 요란스레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이 성곽을 도는 사람들이 우리 뿐이 아니다.

뭔 매력이 있어서 이 슬픈역사가 묻어있는 성곽을 많은 사람들이 힘들게 돌고 있는걸까?

 

 

 

 

슬픈 역사 따윈 관심도 없고 돌고자 했으니 돌고 있을까? 맞다. 그게 맞을 것 같다.

그것을 생각해 본들.. 그래서 외쳐본 들.. 귀담아 들을 지도자들이 얼마나 될까?

 

 

 

 

그래도 꾸준히 외치고는 봐야 한다. 그래서 누가 내 애기에 귀를 기울이는지

혹은 귀담아 듣는 이 누군지를.. 그에게 표를 던질 이유이다.

 

 

 

 

아~~  이것도 병인가 보다. 여기 남한산성을 돌 때마다 현타가오고

오롯이 개인영달을 뀌하는 것이 인간이든 집단이든 그것에 주저리 주저리 욕을 해 대는 것이..

 

 

 

 

남문이 보인다. 그런데 보령 친구 J의 귀가시간도 생각을 해야 하고..

 

 

 

 

명색이 네 성문은 모두 돌아 봤으니 남장터 구간은 감나무의 까치밥 남겨두 듯 남기기로 한다.

 

 

 

 

그래서 남문을 통과하고 친구들은 천천히 

남한산성 남문

 

 

 

성안 마을을 구경하면서 내려오기로 하고 운전수인 나는 동문을 향해 부지런히 내달렸다.

 

 

 

 

동문 주차장에 이르니 오후2시 10분이 다 돼가는 시간. 바지런히 차에 올라서

 

 

친구들과 제회를 한다.

다시 이매로 와서 평소 자주 들리는 음식점으로 가 늦은 점심을 가졌다.

언제나 서로의 마음깊이를 잴 수 있는 두 친구 T와 M의 티키타카를 양념으로

그렇게 고교시절의 성장판을 패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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