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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오대산 _ 24년 새해맞이 하기. 본문
2024년 1월 5일(금)
청룡의 해, 새해맞이 산행을 유서 깊은 오대산에서 가졌다.
상원사 주차장에서 산행 준비를 마치고
상원사 - 비로봉 - 상왕봉 - 상원사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했다.
차가 평창군에 들어서기 전, 빗방울이 흩뿌려서 우중충한 산행이 되지 않을까 염려스러웠는데, 다행히 산행 중에 비를 만나지 않았다. 오히려 미세먼지 다 날려버린 세찬 바람으로 환상적인 상고대를 볼 수 있었다. 산악회 MTR과 함께 했다.
막 10시가 되어가는 시간에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고, 겨울 산행 채비를 갖추고 상원사로 향하면서 새 해 첫 산행을 시작했다.
상원사로 향하는 길에 놓인 석상들과 잘 정비된 길. 이런 번뇌가 사라지는 길을 만들려고 각종 재료들을 길가에 늘어놓았던 때에 여기를 왔었으니 참 오랜만에 오대산을 다시 오는 것 같다.
상원사에 도착했다. 세조와 관련된 일화가 많으며, 동종 등 유명한 문화재들이 있고 월정사와 달리 전화로 손실되지 않은 사찰이라는데,
문수전 앞마당 한편에 있는 극락조가 얼마나 화려하고 생동감이 있던지... 그것을 보다가 정작 요즘 냥덕들에게 인기가 있는 고양이석상은 유의하여 보지 못하고 걍 산길을 재촉했다.
상원사를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비로전이 나오는데...
산자락에 기대어 지어진 독특한 건축양식과 색감이 풍부해서 이곳을 올 때마다 마치 유명한 사진작가인 양 연신 카메라 셧터를 눌러대곤 했던 곳이다. 오늘도 정신없이
카메라 셧터를 눌러대다가 옛 기억이 떠올라 계면쩍게 웃으면서 슬그머니 적멸보궁으로 향했다.
비로사에서 잠시 오르면 곧 보이는 적멸보궁. 부처님의 진신 사리를 모시고 있는 불전을 적멸보궁이라 한댄다. 따라서 따로 불상을 봉안하지 않고 불단만 있는 것이 특징이라는데...
여기 오대산의 적멸보궁 앞에 서 있으니... 따사로운 햇살이 마치 부처님의 은혜로움만 같아 마음이 금세 훈훈해졌다. 이외에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영월) 법흥사 그리고 태백산 정암사에 적멸보궁이 더 있다.
적멸보궁 이후로 잠시 완만하던 길이 본격적인
오름길로 접어들었다. 땀은 내지 않고 체온만 유지하는 게 겨울산행의 관건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어느 정도 오르다 보니 등허리로 땀이 축축히 고이고 있다. 그래도
때마침 상고대가 보이기 시작해서 그것들을 구경하며 오르다 보니 땀이 흥건히 고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눈이 내리지 않아도 좋으니 비만 오지 않아도 좋겠다는 심정으로 오르고 있는데... 오우~~ 이런 멋진 상고대라니...!!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상고대의 굵기가 커져가고 급기야
가지에 쌓인 눈이 살짝 녹았다가 다시 얼어서 아주 독특한 형태의 상고대를 연출하고 있었다. 이러니 그냥 길 위에만 있을 수 없어
길 옆 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무릎까지 빠뜨리며 눈과 온몸으로 교감을 나눴다.
마치 걱정이라곤 열심히 눈썰매를 타다가 양말을 적시고 나서 어머니께 혼날 걱정뿐이었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눈 속을 헤집다 보니 어느새
비로봉 정상에 올라와 있다. 하하 참! 흰 눈으로 덮인 하얀 세상 더군다나 세찬 바람이 있어서 썰멍한 바람이 여전히 얼굴에 부딪치는데
가슴속에선 따시한 기운이 퍼져나가 몸을 덮여주고 있으니 참 신기할 따름이다. 사실, 신기할 것도 없긴 하다.
마음이 즐거우니 몸도 덩달아 좋은 기운이 스며들 테고, 덕분에 따스함은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그 즐거운 마음을 간직한 채, 상왕봉으로 경쾌하게 출발을 했다.
그런데, 비로봉에서 상왕봉으로 가는 이 능선은
설국이 아닐 수 없다. 그 어느 나무라도 눈꽃이나 상고대를 입고 있으니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
옆 산우들과 말 하는 것도 아까워 입 꾹 다물고 연신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걷고 있다.
오우~~ 세상에... 인간이라면 결코 만들 수 없는... 지금의 기온과 날씨 그리고 눈이 빚은 이 작품을
함께 걷고 있는 산우들 이외에는 볼 수 없겠지? 기온이 다르고 빛도 다를 테니까... 어쩌면 인상파들이 추구하는 작품의 세계를 어렴풋하나마 알 수 있을 것만 같다.
고도가 낮아짐에 따라 상고대의 굵기도 점점 얇아져가고 있지만, 또 그 나름의
멋짐을 보여주고 있어서 아직도 엘사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간직하면서 걷고 있다.
생각해 보면, 누군가 곁에 있어서 자신의 가치가 높아진다는 예를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그런 의미로 이 주목들에겐 눈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쌓인 눈이 많다 보니 내림길도 이젠 겁나지 않는다. 왜?
ㅋㅋ 넘어져도 푹신한 눈이 몸을 포근히 감싸주니까... 그러니 안 넘어졌다면 일부러라도 눈 밭에 누워 뒹굴거려 볼 일이다. ^^
내림길이 끝나고 비로봉의 영역에서 상왕봉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길. 키 큰 나무들 가지들 끝에 앉아있는 상고대들을 보려고 위를 올려다 보니 어느새 파랗게 변해 있는 하늘 그와 대비되어 희게 빛나는 상고대.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멋짐이다.
가을이든 겨울이든... 오대산 하면 떠오르는 곳 중 하나가 이 길인데... 그 중 유독 강하게 기억되는 것이 이 오랜 고목이다.
이곳을 지난지가 적어도 7년은 되는 것 같은데... 그 때의 그 기억의 나무는 지금과 똑 같다. 아니 이 고목도 많이 낡아졌겠지만... 나 역시 그 만큼 낡아졌으니 그리 생각되어지는 것 같다.
잠시 고도를 높이자 하늘이 훤히 열리고 상왕봉도 가까이에 보여
이제는 등허리로 땀이 흐르든 말든 개의치 않고 빠른 걸음으로 올라가
상왕봉 정상에 올라섰는데... 가만...? 정상석이 분명 있었는데... 없네???
ㅋㅋ 둘러보니 정상석이 눈더미 속에 반쯤 묻혀있었다. 어느 진실이든 존재 하기는 매 한가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은 누가 숨겼든지 묻었든지... 볼 수 없다는 것은 둘러보려는 의지가 없다는 것이겠지.
시간이 된다면, 두로봉까지 갈 예정이라서 하산을 서둘렀다.
지금까지와 달리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 좀 전에 말했다시피 넘어져도 걱정되지 않으니 마치 스키를 타듯이
내리막을 내려와
두로령과 상원사로 갈리는 갈림길 앞에 섰는데...
두로령으로 가는 길엔 발자국이 하나도 없다. 이런이런 900여 미터를 럿셀하다가는 기진맥진 할테고...
복잡한 심사를 오늘의 리더께서 과감하게 일도양단! 상원사로 갈 것을 명 하셔서
모두들 불만 없이 상원사로 향했다. 이곳 역시 사람들의 흔적이라곤 대여섯 명 정도의 발자국 뿐.
눈이 깊기도 하고 어느 곳은 미끄럽기도 해서 해서 그럴 바엔 아예 스키를 타거나 썰매를 타기로 결정하고
줄지어 자리 잡고 앉아 엉덩이 썰매를 타면서 내려가니 갑자기 유년의 뜰로 순간이동한 느낌이다. 전혀 다른 상황이지만 백척간두 진일보란 말이 떠올랐던 눈썰매였다.
재밌는 눈길을 나와 임도와 접속을 했다. 이 임도,,,
예전 두로령에서부터 걸어내려갈 때, 무척 지루해 하면서 걸었었는데... 이번엔 그 기억을 떨구려고 왼쪽으로 보이는 북대(미륵암)와 앞쪽에 보이는 백두대간을 살펴보면서 걸어가고 있다. 그래도 워낙 긴 거리라서
오대라 함은 5개의 암자(동대-관음암, 서대-수정암, 남대-지장암, 북대-미륵암, 중대-사자암)를 의미하며 거기에
5개의 봉우리(비로봉, 동대산, 두로봉, 상왕봉, 호령봉)를 덧붙여 오대산이라 명했다는 유래까지 함께 가는 산우님과 이야기를 모두 마치고 나서도 한참을 더 걸어와 상원사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오대산. 이제는 특별히 뭔가를 경계 짓지 않는데, 적멸보궁에서 새로운 마음을 세울 수 있었다는 점, 눈꽃과 상고대의 감동, 눈썰매를 타면서 얻은 즐거움있었으니 24년의 첫 산행으로 충분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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