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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소백산, 초암사길 _ 처음으로 바람이 없는 주능선을 걸은 날. 본문
2024년 1월 29일(월).
소백산에 다녀왔다.
초암사주차장에서 초암사 - 국망봉 - 비로봉 - 달밭골 - 초암사주차장으로 원점회귀를 했다.
칼바람과 눈으로 이름이 높은 곳이지만 이번 겨울엔 바람과 눈이 명성을 따르지 못해, 이제야 찾게 됐다. 예상한 대로 적은 양의 눈길을 바람이 없어 춥지 않게 산행을 했다. 산악회 MTR과 함께 했다.
초암사주차장(4,000원_카드온리).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듯 하다. 부대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불편함 없이 산행준비를 마치고 10시경 초함사로 향해 갔다.
일주문을 지나고 초암사를 지나서 산길로 접어들었다.
소백산 자드락길로 달밭골과 국망봉으로 향하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두 곳이 갈리는 갈림길이 나왔다. 왼쪽의 달밭골길은 내려올 예정이라서 망설임 없이 직진을 했다.
백두대간 고치령에서 오르는 길 말고는 소백산을 오르는 길을 모두 걸어봤는데... 그 중에 제일 많이 이용하는 길이 지금 걷고 있는 초암사길(석륜암골)이다. 아마도
자가용을 활용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인 것 같다. 국망봉을 2km 정도 앞두기까지 계곡길이어서 그늘이 깊고 수량이 풍부해 산으로 들어갈수록 그동안의 추위가 만든 얼음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곳에선 길 전체가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건너 가기가 쉬워보이진 알고...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아예 아이젠을 장착하고 건넜다.
생각해 보니 이 길로는 가을철을 제외하고는 계절별로 한두 번은 다닌 것 같은데...
길 옆의 이런 천연동굴은 오늘 처음 보는 것이다. 눈 위의 토끼 발자국 덕택에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동굴 속을 들여다 봤는데...
OMG!! 역고드름이 자라고 있었다. 천정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고드름이 자라날 수 있을까? 월악산 보덕굴과 덕유산 오수자굴에서도 역고드름을 봤었는데... 여전히 궁금증을 해소하지 못했다.
국망봉을 2km 남짓 남겨둔 지점부터 길이 사면으로 들어서면서 홀로서기를 시작하는데,
이별의 아픔이 언제나 그렇듯 그 홀로서기의 댓가로 힘겨움과 고통이 수반된다. 나무로 됐든 돌로 됐든 가파른 계단길을 오르는 것이 그것이다. 그래도
헐떡이는 심장을 진정시켜야 하지 않을까 할 즈음에 나타나는 평지.
낙동강 발원지가 되는 만큼 물기가 풍부한 봉두암터이다.
이 바위가 봉을 닮았다 해서 봉바위라 부르던데... 아마도 봉두암의 유래가 되는 바위는 아닐런지... 벌써 12시를 넘긴 시각. 따듯한 곳에 자리를 펴고 마치 밥 먹으러 여기에 온 것처럼 점심을 즐기고
봉바위와 함께 이 길의 시그니쳐인 돼지바위와 는맞춤을 하고... 이 길의 하이라이트인
급경사길을 오르고 또 오르고... 잠시 숨 고르고 또 오르고... 그렇게 600여 미터를 올라가서
소백산 주능선길과 만났을 때의 그 성취감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우선
와아~~ 함성을 냅다 지르면서 주능선을 따라 비로봉 보기.
온 길을 뒤돌아 보면서 저기가 순흥저수지니까 요리 조리 올라왔구나 하면서 뿌듯해 하기. 그래서
조금이나마 벅찬 마음이 가라앉을 때, 국망봉을 향해 발걸음을 디디면 된다.
국망봉으로 가는 길. 오른쪽에 보이는 상월봉은 늦은맥이재를 통해 어의곡리로 내려갔을 때 딱 한 번 간 곳. 저 곳과 고치령으로 연결된 대간길은 미답인 곳.
국망봉. 사실, 비로봉 정상석 보다 더 많이 만난 국망봉 정상석과 인사를 나누고
멀리 흰눈을 이고 있는 비로봉을 향했다.
좀 전에 올라섰던 초암사갈림길로 뒤돌아간 다음 소백산주능선에 올라 비로봉으로 향했다.
봄에 왔을 때나 여름에 왔을 때도 언제나 세찬 바람과 마주했었던 이 주능선길.
물론 겨울엔 뺨을 할퀴는 칼바람이 있었던 곳인데... 지금은 바람 한 점 없고 그래서 세찬 바람이 그대로 얼어 만들어진
상고대 대신에 눈들이 나무에 붙어서 마치 꽃인양 혹은 싱그런 잎인양 하고 있다.
그래도 기온은 여전히 영하의 날씨. 장갑을 벗고 폰으로 사진이라도 한 컷 찍고나면 한동안 손이 시려 얼른 장갑을 끼고 손가락을 꼼지락 거려야 했다.
이제 비로봉이 가까이에 보이고 뒤돌아 보니 국망봉은 멀리 보였다. 국망봉에서 뻗어내린 신선봉 능선도 걷기에 좋다던데... 그곳 역시 미답. 뭐 기회는 만들기 나름이니까.
작은 구릉을 오르고 내리길 한두 번 하고 나니
비로봉 정상이 코 앞에서 보였다. 다 왔구나 하는 생각도 에너지원인지
단숨에 능선위로 올라가 거친 호흡을 달래면서
온 길을 뒤돌아 본다. 와우~~ 국망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이 웅장한 능선...
사시사철 언제나 멋지게 보이는 비로봉 오르는 길.
천문대가 있는 연화봉부터 여기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멋진 능선을 보면서 오르고 있다보니 입꼬리가 눈을 향해 있다는 것을
비로봉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현재 시간이 오후 2시 40분.
국망봉에서 빨리 걷는다고 걸었지만 1시간 10분 정도 걸린 것 같고 초암사까지는 적어도 3시간을 더 걸어야 해서 정상석과 교감을 하자마자
비로사 방향으로 하산을 서둘렀다. 그렇지만 아무리 바빠도 볼 것은 보고 가야 하는 법.
오른쪽 멀리까지 펼쳐진 소백산 주능선을 따라가 죽령 건너편에 있다는 도솔봉도 한번 오를 결심을 세운 후
비로사 방향을 향해 서둘러 하산을 하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길 위의 눈과 얼음이 걸음을 더디게 했다.
서두른 만큼 1시간하고 15분 정도를 걸어 달밭골 마을에 들어섰는데...
예전 기억엔 없는 건축물과 시설물들이 들어서 있어서 초암사로 향하는 자드락길 입구를 찾기가 힘들었다.
뭐~ 옛 기억 중 살아있는 것을 끄집어 내어 아래쪽 매점이 있는 곳까지 내려와 초암사 가는 길을 잡았다.
그런데... 예전에 없었던 집이 보이고, 길이 그 집 앞 계단을 통해 가기도 하니
몹시 생소하기만 했다. 그래도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가다 보니 눈에 익은 잣나무 숲이 나오고
예전에 월전마을을 통해 비로봉에 갈 예정(실패했음)으로 들어섰던 월천계곡 입구도 지나게 되어 점차로 마음이 안정돼 갔다. 그런데... 날이 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어둡다 싶었는데 곧 컴컴해 졌다. ㅋㅋ 참 오랜만에 시커먼 밤에 산에서 내려오는 것 같다.
주차장으로 내려와 시간을 보니 6시 30분이다. 예기치 않은 모처럼의 장기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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