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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정선 노추산 _ 힘들어도 즐거운 러셀 산행. 본문
2024년 2월 27일(수).
강원도 정선군 북면과 강릉시 왕산면을 경계하는 아리랑산과 노추산을 다녀왔다. 걸은 길은
절골 - 조주선관 - 이성대 - 병풍바위 - 아리랑산 - 노추산 - 이성대 - 절골로 원점회귀를 했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씨로 산 아래에서는 따듯했으나 산 위에서는 제법 쌀쌀했다. 능선에서는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두텁게 쌓여있어서 힘들지만 즐거운 러셀을 산행을 했다. MTR 식구들과 함께 했다.
대관령을 넘어가 강릉을 지나면서 본 대관령에서 선자령으로 이어지는 대간길. 와~~ 하얀 상고대가 환상처럼 다가왔다.
그렇다면, 언제나 눈이 많은 강릉시 왕산면에서 노추산을 오른다면 또 다른 설경이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강릉힐링캠프 주차장으로 갔는데... 황홀한 설경으로 취해있던 정신이 다시 현실로...
이번 계획은 이랬다. 가마봉으로 들어가서 괴병산을 넘고 아리랑산과 노추산을 상황 봐서 사달산까지도 본 다음 모정탑으로 내려와 원점회귀를 한다. 하지만
가마봉으로 들어서는 입구부터 두터운 눈이 길을 이미 지웠고 사람이 다닌 발자국 하나 없어서 혹시 절골에는 어느 산우님의 발자국이 있을까? 하는 생각에 오장폭포를 구경하고는 구절리로 들어섰다.
10시 40분. 사달산까지 다녀오기엔 무리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노추산은 충분히 다녀올 수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스틱을 펴고 절골로 들어섰다.
와우~~ 마을을 벗어나 절골로 들어서는데, 다행히도 눈길 위에 딱 한 분의 가고 오고 한 발자국이 보였다. 이곳으로도 산행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해소가 되니
왠지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듯하다. 절골이란 이름이 있는 골짜기이니 분명 예전엔 절이 있었을 텐데... 여긴가? 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도 생기고...
여러 정황상 기도원이 아닐까 생각되는 조주선관에 도착했다. 절골 입구에서 약 50분 정도의 거리에 있는데, 산길은 이곳부터 잠시 임도 위를 지나다가 다시
산으로 들어서는데... 오른쪽 한참 아래로는 많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함께 했다.
제법 급한 사면을 지나는 길. 어느 산우님이 다녀가신 흔적이 없었다면 길 찾기에 힘 겨웠을 텐데... 이 자리를 빌려 그분께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제법 깊숙이 내려앉아 있던 계곡이 불쑥 올라와, 그 계곡을 건너 곧바로 열심히 따라 올라가니
아라리샘터라는 이정표가 보여, 그곳에 들려 물 한 그릇 떠가지고
시원한 드링킹 원 샷! 물 맛이 좋았다. 여름철에 이곳에 다시 온다면 무거운 물 짐을 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약수로 에너지를 채우고 나니 절로 발이 움직여지고
그래서 다시 출발. 이제부터는 점차 가팔라지는 길. 경험으로 느낀 사실은 이럴 땐 오르는 것에만 고집하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야 훨씬 효율적이라는 것. 참 특이하게도 이 고드름엔 색이 있네? 와~ 저기 저 쭉쭉 뻗은 대단한 적송 등등. 그렇게 오르다 보면
이쯤에서 쉼을 주세요 하는 쉼터도 나오고... 그러면 굳이 거스르지 않고 충분한 쉼을 주어야 산과도 깊은 교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쉬다 보면 다시 가야 할 때를 저절로 알게 되는데, 중요한 것은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 때 보다 일찍 걷게 되면 피로가 누적되기야 하겠지만 목표한 곳으로 갈 수 있다. 하지만
그때를 지나치게 되면, 피로한 육체가 온갖 이유를 만들어 목표를 낮추어 잡게 하거나 혹은 종종 포기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제 너덜겅이 보이는 것을 보니 9부 능선쯤 온 듯하다. 하지만
경사도가 최상급인 구간. 짧은 거리였지만 한두 번의 쉼을 갖고서야
이성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설총 선생께서 노나라의 공자와 추나라의 맹자를 기리는 곳이라서 이성대라고 한다는데... 그런 의미에서 산 이름도 노추산이라 불린단다.
이곳에선 조망도 좋아 앞쪽으로 시원히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이... 발왕산..? 가리왕산인가..? ㅋㅋ 뭐가 중헐까? 이런 경치를 보는 것으로도 충분한 걸.
어쩐지 배가 고파서 시계를 보니 벌써 1시 50분. 산행도 좋지만 먹는 즐거움도 놓칠 수 없으니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펴고 식도락을 즐겼다.
배가 불러서일까? 이곳에서 이 부근의 최고높이를 가진 아리랑산을 거쳐서 노추산으로 가기로 결정한 것은... 지금까지 길을 이끄신 분은 막바로 노추산을 향했지만 우리는 그 반대 방향의 아리랑산으로 향했다.
두터운 눈이 지운 길. 단지 초입에 있는 줄난간만이 이곳이 등로라는 것을 알려주었지만 그나마도 금세 없어지고
그동안의 산행력을 총 동원해서 어느 곳은 무릎에 오는 눈구덩이를 헤쳐 나아갔다.
힘은 들고... 시간은 지체되고... 이러다가 해지기 전에 하산은 할 수 있을는지... 뒤돌아갈까? 몇 번을 망설이며 가다가 만난 커다란 바위. 이것이 병풍바위? 그렇다면
아리랑산이 지척에 있다는 뜻! 아늑함이 느껴지는 비박터의 따스함을 더해서 아리랑산을 향해 뒤돌아보지 않고 힘차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3시 20분! 드디어 노추산 주능선과 접속을 했다. 세상에 이성대에서 고작 700 미터 오는데, 1시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힘든 숨을 달래고 나니 이제야 화려한 상고대가 눈에 들어섰다. 그 화려함을 쫓아 다시
아리랑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는데... 이런 설국이 또 어디에 있을까? 그깟 시간이 지체되면 어때?
호기롭게 까불면서 아리랑산에 올라섰다. 예전엔 이름이 없던 봉우리. 정선군이 정선 아리랑을 기리고자 이 산에 이름을 준 곳이랜다. 그나저나 4시인데 인데... 노추산을 가야 하는 건가?
당연하다는 듯 망설이지 않고 노추산으로 향했다. 역시 가는 길은 여전히 두터운 눈으로 덮여 있었고
여느 산과 산 사이의 구분처럼 어느 정도는 내려가다가
다시 능선을 걷곤 했는데... 역시 사람의 때가 묻지 않은 곳이어선지
주변의 눈꽃과 상고대가 말 그대로 환상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길은 두터운 눈에 덮여있어서 리더와 내가 번갈아 가며 이리저리 길을 찾아가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허벅지까지 쌓인 눈을 러셀 하는 맛도 나쁘지 않은 즐거움을 줬지만 문제는 시간. 그래도
나뭇가지 너머로 노추산 봉우리가 보여서 조금 더 힘을 내며 걸었더니 곧 갈림길이 나왔다. 노추산은 이곳에서 150 미터.
그 숫자가 주는 힘으로 한 움큼 올라서니 순백의 눈이 덮인 평지가 나왔다. 아마도... 헬기장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앞으로 오늘의 최종 목표인 노추산 정상이 있어서, 한달음에 정상석 앞으로 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는데...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내려가야 할 모정탑으로 가는 길은 눈으로 막혀 있고... 어느 곳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사달산은 방향만 잡아 인사를 해야 했다.
이제 오후 4시 56분. 내려가는 도중 어둠에 덮이기 싫어 방금 내려온 아리랑산을 한번 보고는 하산을 시작했다.
ㅋㅋ 그래도 깨끗한 것을 훼손하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있어서 하얀 눈으로 덮인 평지에 발자국을 남기고
좀 전에 만났던 갈림길로 내려와 미성대로 향했다.
이성대로 가는 길은 매우 가팔랐지만 빨리 가고자 하는 욕망으로
쉽게 이성대와 만나서
아리랑산으로 향한 순백의 길에 우리의 발자국 놓인 모습을 어깨 으쓱거리며 바라본 후,
다시 급경사길을 내려서고 산 허릿길도 돌고 빠른 걸음으로 내려가다가
급기야는... 넘어지기까지 하면서 ㅜㅜ 아라리 샘터도 지나갔지만...
조주선관을 지나고 얼마 후엔 이미 어둠에 잠겼다. 그래도 이런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라서 배낭에 있는 랜턴을 꺼내 불을 밝히고 그리고도 한참을 더 걸어서
마침내 절골 입구에 도착을 했다. 7시가 넘은 시간... 아주 오랜만에 예기치 않은 야간 산행까지 했으니 약간의 횡재라 할 수 있으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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