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처럼

히말라야 메라피크(6476m)_ 어쩌면 단 한 번일 소중한 경험. 본문

등산

히말라야 메라피크(6476m)_ 어쩌면 단 한 번일 소중한 경험.

mangsan_TM 2024. 12. 31. 12:03

2024.12.20. 히말라야 메라피크 중봉의 모습_ 정상에서 내려와 휴식중인 선발대의 뒤로 정상을 오르는 후발대의 모습이 보인다.

 

 

메라피크 등정 개념도

 

계절로 치자면 편한 휴식기인 겨울을 눈앞에 둔 늦가을의 60대.  그렇지만 바람에 찢기고 바스러져감에도 작은 미련 때문에 줄기를 잡고 있는 낙엽이기보다는, 제 때에 줄기를 놓고 의연히 땅으로 떨어지는 단풍이고픈 사람들 8명이 의기투합했다. 히말라야 메라피크(6,476m)에 올라가 각자의 삶에 다양한 색채와 고운 윤기를 더할 목적이다. 이미 메라피크를 다녀온 효범(남, 75세)을 총대장으로,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이 있는 용봉(남, 68세)과 성예(여, 60세)를 각각 대장과 총무로 하고 대원으로는 경신(여, 69세), 나율(여, 65세), 소현(여, 62세), 미경(여, 60세) 그리고 승화(남, 65세 _화자)로 하는 평균나이 65세인 원정대가 그렇게 꾸려졌다. 워낙 일찍이 결성한 관계로 차근차근 준비물을 갖추었고 마침내

2024년 12월 9일. 네팔 카트만두에 들어섰다. 공항에서 우리의 메라피크 등반에 대한 가이드 겸 셀파인 펨바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그의 인솔에 따라 시내의 한 호텔에서 1박을 했다. 12월 10일. 메라피크 등반의 첫 출발지인 루클라로 가기 위해 이미 경비행기를 예약하고 탑승을 기다렸지만, 짙은 안개가 경비행기의 운행을 막고 있어서 대신에 비용을 좀 더 보태서 헬기로 이동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론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헬기로 가는 동안 쉽게 볼 수 없는 히말라야 연봉들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루클라에 도착을 하여 가볍게 마을을 산책한 후, 히말라야 대부분에서 비슷한 형식인 한 롯지에서의 첫 밤을 보냈다. 침낭을 펴고 그 속에 뜨거운 물을 담은 물병으로 기온을 올리고 우모바지를 입은 채로 침낭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하는 첫 체험이었지만, 루클라 자체가 고도 2800 미터여서 저녁때 이미 먹은 고소약(아세타졸)의 영향으로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거린 기억이 오히려 더 강하게 남았다.

 

12월 11일. 드디어 메라피크를 향한 첫 걸음을 시작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고도 3020 미터인 추탕가. 수치 상으론 겨우 200여 미터 고도를 높이는 것이라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면서 길을 나섰다. 큰 산으로 둘러싸인 루클라. 그런데 그 산들의 첫 느낌은 뾰족하고 날카로우며 높고 거칠다는 것이어서 길이나 제대로 있을까 싶었는데, 의외로 부드러운 곳곳을 따라 길이 무척 잘 나아 있었다. 길이 얼마나 안온한지 마치 우리의 옛 시골길을 걷는 느낌이 났지만, 대부분이 산세로 인해 급한 오름길인 점은 우리가 감수해야 할 몫이었다. 그렇다고 힘이 드는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고산에서의 주행법은 아주 여유롭고 천천히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굳이 힘겹다면?  걸음을 멈추면 된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절로 에너지가 쌓이는 느낌이다. 오르는 내내 줄곧 보이는 눈 덮인 콩테산이 큰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였을 것 같은데

추탕가 가는 길에 본 꽁데산(오른쪽 흰 봉우리)

오르는 도중, 나율은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지난봄에 어머니를 여읜 슬픔과 그럼에도 이 길이 꼭 걷고 싶어서 어려운 와중에도 몸을 단련시키고 이곳을 걷고 있는데 그 결과 충분히 걸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어우러져 울컥하는 맘이 눈물이 된 모양이다. 그래선지 한바탕 눈물을 쏟은 나율의 모습은 빛나 보였고 발걸음에도 활기가 보였다. 그런데 200여 미터의 고도를 올리는 것이라면 이쯤에서 추탕가의 모습이 보여야 할 텐데. 전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소현은 못내 그것이 몹시 힘든 사실로 다가가는 듯 보였다. 왜냐하면 산길로 접어들면서 속이 점차로 더부룩해져서 숲 안쪽으로 살짝 들어가 어떻게든 거북한 속을 달래고 나왔지만, 이제는 발걸음에 힘이 닿지 않는 것 같다는 푸념이 소현의 입에서 중얼거리듯 나왔기 때문이다. 혹시, 고산병 증세는 아닐까? 걱정했는데 옆에 가는 셀파에게 배낭을 맡기기는 했지만  여전히 끈기 있게 5시간 정도를 산행해서 추탕가에 도착한 것을 보니 그것은 아닌 것 같아 걱정을 덜었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까지의 산행력으로 보아 겨우 200여 미터의 고도를 올리는데 지금처럼 힘들 것 같지는 않아서 펨바에게 그 생각을 말하니, 고도계를 살펴본 펨바가 말하길, 실재 이곳의 고도가 3400 미터가 넘게 나왔다고 한다. 아마도 오늘은 고도를 600여 미터 정도 올린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암튼, 고산 산행에서의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잘 먹는 것도 있다 하니 소현씨 억지로라도 저녁을 든든히 먹고 고소약도 빼놓지 말고 잘 드셔서 내일은 부디 좋은 컨디션이 되게 아주 푸짐한 잠을 가지셔유.

 

12월 12일. 오늘은 고소적응의 한 방편으로 체뜨라라(4,660m)를 넘어가 체뜨라부(4,360m)에 있는 롯지까지 트레킹 하는 날이다.  4 킬로미터를 걷는 동안 고도를 1200여 미터를 올려야 하니 그 가파른 정도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으니 아침을 꼭꼭 씹어서 먹고, 7시경에 길 위에 섰다. 하하 실없이 웃음이 풀썩거리며 나오고 있다. 쉴 평지 한 뼘 없이 오름을 계속 강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3시간 정도 올라가 만난 카르카텡 롯지 안에서 이른 점심을 한다는데, 그곳에서 숨을 고르고 체력을 보강했다는 것이 약간의 위로가 되려나? 좀 늦게 도착한 소현의 표정을 보니 어제 보다는 한결 편안해진 모습이다. 그 모습이 대견스러워 괜히 팔 하나 올리고 홧팅! 하고 외쳐줬다. 점심을 마치고 커피 한 잔으로 입가심을 마친 후에 다시 또 가파른 오름질을 시작했다. 어째서 나는 지금 시점에 개미지옥이 생각났을까? 그곳에 빠진 개미처럼 오르고 또 올라도 계속 오르막만 나타나는 현상 때문은 아닐까?

체트라라로 가는 중에 본 카르키텡과 그 아래의 추탕가.

 

마침내 고개에 도착을 했다. 여기가 체트라라인가 보다 했는데, 펨바 셀파가 좀 더 산을 둘러가야 체트라라가 나온다고 한다. 한참 동안 햇볕 바라기를 하면서 일행들을 기다렸다가 체트라라로 향했다. 이미 고도가 4600 미터 이상이어서 식생이라곤 누런 이끼류 한 종류뿐. 죄다 검은 돌로 뒤덮인 곳을 가로질러 내 몸까지도 휘청일 정도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 체트라라(4,660m)를 넘고 그 한참 아래에 있는 체트라부 롯지에 도착했을 때엔 어느 듯 해가 넘어갈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해가 땅 밑에서 정수리만 간신히 보여줄 즈음에 소현과 효범도 도착했는데 둘의 모습이 몹시 안 좋아 보였다. 급기야는 펨바의 등 토닥임에 소현은 별로 먹은 것도 없음에도 속의 많은 것들을 밖에 내놔야만 했다. 쯧쯧 고소증은 그 누구도 가리지 않는다더니만 이번엔 소현에게 달라붙은 모양이다. 반면에 효범은 산소포화도가 50%대로 떨어져 있어서 한동안 산소마스크를 끼고 있어야만 했다.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은 일정에서 벗어나 내일 아침 헬기로 루클라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이 용봉에게는 아주 큰 부담으로 다가간 모양이다. 설악산의 많은 산길을 알려주고 암벽 등반에 대한 일, 이, 삼도 가르쳐줘서 알게 모르게 효범에게 의지하는 마음이 있었던 용봉에게는 이번 메라피크 등반에 대한 리더로서의 책임감을 오롯이 홀로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 몹시 무겁게 다가왔던 모양이다. 그래서 잠자리에 들기 전, 당뇨병 환자가 약도 챙기지 않는 그런 무책임한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등 효범에 대한 원망과 푸념을 룸메인 내게 쏟아붓듯 말을 했지만, 그도 나도 아니 효범도 어렴풋하게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아댄 것은 당뇨병보다는 나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12월 13일. 오늘은 여기 체트라부 롯지에서 고테 롯지로 가는 7.2 키로미터 정도를 걷는 날이다. 대체적으로 고도를 700여 미터 낮추는 것으로 지난 이틀의 강도 높은 트레킹으로 어쩌면 예민해졌을 몸을 이완시켜주는 트레킹이라 생각해도 무난할 듯 싶다. 체트라부 롯지에서 아침을 마치고 8시경에 출발, 한 30여 분 걸었는데 뒤쪽에서 헬기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효범과 소현을 싣고 루클라로 갈 헬기인 것 같았다. 혹여 함께 하지 못하는 서운함이 긴 꼬리가 될까 봐 그들과 간단하게 눈만 마주치고 헤어졌는데 못내 그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체트라부에서 고테로 가는 고산 길은 비록 오른쪽으로 깊은 비탈과 함께 하지만 워낙 시야가 넓게 열려 있어서 마치 영화 'The Sound of Music' 중 아주 즐겁게 보았던 알프스의 한 장면을 생각나게 했다. 물론, 그때의 감동도 지금의 걷는 즐거움 속에 스며들어왔고. 어느 한 고개를 넘어서면서 보이기 시작하는 메라 피크의 풍경은 스스로가 압도되기에도 충분했다. 다만, 펨바가 손을 들어 메라 피크를 가리켰지만, 불행히도 펨바의 손 끝을 본 바람에 지금도 아래의 그림에서 어느 것이 메라 피크인지는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체트라부에서 고테로 가는 길 중에 보이는 메라 피크_왼쪽의 흰 봉우리인 듯.

 

햇볕이 있는 곳은 따듯해서 춥지 않은 곳으로 착각하게 하지만, 그늘진 곳에는 얼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을 정도로 차가운 날씨를 가진 곳이 이곳 날씨의 특징 같았다. 그래서 처음으로 아이젠을 착용하고 얼음길로 내려서기도 하는 등 그렇게 고도를 낮추어 가다가 고도 3,500 미터 정도에 있는 Taktor, Mera란 이름을 가진 롯지에서 점심 겸 휴식을 가졌다. 그리고 또다시 고도를 한 100여 미터 더 낮추고서야 메라 콜라(강)에 닿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강변 길을 따라 2 킬로미터 정도를 더 걸어 오후 4시 20분경 고테에 도착을 했다.

 

12월 14일. 오늘은 메라콜라를 따라 걷다가 탕낙마을에서 여장을 풀 계획이다.  거의 평지와 다름없는 완만한 길이라서 늦은 아침식사에다 여유를 얹고 오전 8시 50분경에 길을 나섰다. 4,600며 미터의 산을 넘어온 효과인지 트레킹 4일째임에도 대원들 모두가 여유로워 보였다. 메라콜라에는 큰바위 작은바위 혹은 큰돌 작은돌 등으로 뒤뎦여 있었는데 상류에 있는 탕낙호수의 둑이 오래전에 무너진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그 모습이 황량하고 거친데도 뭔가 따스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TS엘리엇은 '황무지'에서 말했는데, 4월 이곳에 있는 누구라도 그런 느낌은 받지 않을 것만 같았다. 

고테에서 탕낙으로 가는 메라콜라를 따르는 길.

 

길을 나선 지 한 시간쯤 됐을까? 앞 쪽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던 헬기 한 대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그리고, 가이드 펨바가 휴식 시간을 주고 그들 말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목적지를 탕낙 보다 2 키로미터 정도 앞 당겨진 소레마을로 변경했다고 한다. 탕낙 마을에 있는 한 롯지를 계약했는데, 그 주인이 갑자기 아파서 방금 지나친 헬기로 어느 병원인지 실려갔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에선 헬기가 주요 교통수단이 되는 것 같았다. 암튼, 거리가 짧아진 만큼 소레에 일찍 도착을 해서 모처럼 푹 쉬고 잠도 편안히 잔 것 같다. 12월 15일. 가이드인 펨바의 큰 그림에 따라 고소적응 훈련과 체력 비축을 위해 오늘 하루를 이곳에서 더 머무를 계획이란다. 덕분에 아침을 느긋히 먹고 주변에 있는 산으로 가볍게 출발을 했다. 이곳 자체가 고도 3,900 미터여서 500여 미터 정도 더 올라가 4,000 미터급 고산증에 대비하는 것 같았다. 이곳의 산은 완만한 곳은 없고 모두 급경사를 이루는 산인데, 내가 생각한 평소의 모습과는 달리 미경이 훈련에 임하는 자세가 무척 진지하고 적극으로 보였다. 그 이유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알 수 있었다. 펨바에게 메라 피크를 등정할 가능성을 물었더니 도전자 중 대략 25% 정도를 생각한다는 대답을 듣고,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을 곰곰이 따져보니 용봉과 나(승화) 그리고 잘하면 성예 정도? 그렇게 생각하니 의욕상실이 오더란다. 안 되겠다 싶어 맘을 다잡고 반드시 오르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세웠더니 당연히 훈련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더란다. 결국은 등정에 성공했으니,  멋 지 다!!  미경!

소레에서의 고소적응 훈련_아래쪽에 우리가 묵었던 소레 롯지가 보인다.

 

12월 16일. 이제 메라 피크의 베이스캠프 격인 카레로 가는 날이다. 약 10여 킬로미터의 거리를 걸으면서 고도를 1,000 미터 정도를 높여가는 길이다. 때문에 이른 아침을 먹고 바지런히 준비를 해서 7시경에 출발을 했다. 원래 묵었어야 할 탕낙 마을에 도착하여 잠시 쉼을 갖고, 다시금 출발을 해서 탕낙호수는 내려올 때 보기로 하고 그 호수의 둑 오른쪽으로 걸어 올라가 불상에 대한 전설이 깃든 바윗 속 암자에 들려서 이번 메라 피크 등정에 대한 성공을 경건하게 기원을 했다. 그리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주위에 보이는 사람이라곤 우리뿐이다.  소위 말하는 네팔 여행 비수기라 그런 모양인데, 지금이 왜 비수기인지 의심이 갈 정도로 날씨가 좋았다. 우리 대원 6명과 셀파팀 4명, 쿡팀 5명 그리고 포터 12명이 함께 움직이니 적막한 기분도 들지 않았다. 카레에 가까이 갈수록 환경도 약간씩 변했는데, 태고의 풍경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경이롭고도 신비로운 풍경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암튼,

탕낙에서 카레로 가는 길의 한 풍경.

 

소레에서 장장 8시간을 넘게 걸어 오후 3시 20분, 해발 5,000 미터에 있는 카레에 도착을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우리의 옆집 아저씨처럼 생긴 쿡팀 수쉪의 맛깔난 저녁으로 배를 채우고 지정된 롯지로 들어가 고단했던 하루를 매듭지었다. 12월 17일. 오늘은 카레를 중심으로 매라 피크와 맞은편에 있는 작은 동산에 올라 고소적응 훈련을 한단다. 덕분에 여유로운 아침을 하고 9시경에 동산으로 올라가는데, 많이도 아닌 겨우 300여 미터의 고도를 높여가는 것임에도 숨이 가빠졌다. 역시, 5,000 미터급의 산행은 뭐가 달라도 약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적당히 올라왔다는 생각을 해서인지 펨바가 잠시 멈추게 하더니 카레마을 건너편으로 보이는 메라피크를 알려주며 어떻게 오를 것인지 대략적인 설명을 한 후에 내려갈 것을 지시했다. 후후 이런 상황에서도 내려간다니 좋아라 하는 내가 우습기도 했지만, 암튼,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다시 마을로 내려왔다. 잠시 짬을 갖다가 점심을 하고는 푹 쉬면서 체력을 비축했다. 

고소적응 중에 본 메라피크_ 붉은 원

 

12월 18일. 펨바가 다시 큰 그림을 그렸는지 일정과 다르게 오늘도 역시 한나절 고소적응 훈련을 하고, 오후는 체력비축을 위한 휴식을 갖는단다. 이미 펨바가 유능한 가이드 겸 셀파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는 이상 이의는 없었다. 하지만, 이런다고 나 자신은 과연 정상에 갈 수는 있을까? 하는 생각이 각자가 자신에게 주는 의심의 씨앗이 되기엔 충분했다. 특히, 며칠 뒤면 70세가 되는 경신에게는 큰 화두와도 같은 모양이다. 국내 산행에서는 거기가 어디든 설령 약간의 무리가 있었다고 해도 무탈하게 산행을 완주하곤 했었던 경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보이긴 했지만, 효범이 도중하차한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섰던 모양이다. 그래서 정상에 도전을 할지 말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고소적응 훈련에 들어섰는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무척 힘이 들었던 모양인지 훈련을 마치고 점심 식사 자리에 앉은 경신의 모습은 무척 어둡게만 보였다. 그렇지만, 체력비축 시간인 오후 시간을 보내고 저녁 식탁으로 들어서는 경신의 얼굴은 전과 다르게 빛이 났고 눈빛 역시 반짝였다. 그 나이에 이미 5,000 미터급의 고산에 올랐고, 지금까지 고산증도, 체력소진도 없었다는 것이 굳이 정상을 도전하다 큰 부상당할 우려보다는 더 가치롭다는 생각이 들어 정상에 도전하지 않을 결심을 세웠기 때문이란다. 오호! 지혜롭습니다. 경신님. 힘 있게 응원합니다.

 

12월 19일. 오늘부터 정상으로 가는 길. 날씨가 무척 좋다. 경신과 나율은 능력 껏 갈 수 있는 곳까지 가기로 하고 용봉, 미경, 성예 그리고 내가 정상으로 가기 위해 아침 7시 30분경 카레에서 출발 하이캠프로 향했다.  한 40여 분 마른 길 위를 걷다가 드디어 커다란 빙벽 앞에 있는 크렘폰 포인트에 섰는데, 멀리서 봤을 땐 대단해 보이지 않던 빙벽이 가까이서 보니 마치 불가침 영역으로 보였다. 그래도 올라가야 하니 크렘폰을 착용하고 한 손엔 피켈을 들고 펨바를 비롯한 셀파 4명과 용봉, 나, 미경 그리고 성예 이렇게 하나의 줄(안자일렌)에 묶고 하이캠프로 출발을 했다. 네팔에서 산을 잘 타는 누구나가 셀파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란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고산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이젠 DNA로 새겨진 종족을 셀파로 부른단다. 그런 셀파인 펨바는 오르기도 힘들고 숨은 또 얼마나 가쁜지 한 걸음 딛기도 힘들어하는 우리와는 달리 크레바스가 있는 곳 혹은 그 조짐이 보이는 곳을 용케 찾아내어 이리저리 그것을 피해 가면서 능숙하게 길을 인도했다. 암튼, 힘들게 겨우겨우 빙벽 위에 올라가서 이제는 수월하게 걷겠지 했는데 어째 높이가 수그러질 기미가 없다. 얼마나 힘이 들던지 분명 추위에 노출되었음에도 그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크렘폰 포인트에서 본 빙벽의 모습_멀리 쿡팀의 모습이 개미처럼 보인다.

 

힘이 들기는 비교적 최근에 히말라야 트레킹을 한 총무 성예도 마찬가지 같았다. 뭐든 계획성과 준비성이 좋고 체력도 좋아서 함께 국내 산행을 할 때는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었는데 하이캠프에 올라와 그를 도운 셀파에게 감사의 표시를 과장되게 하는 모습을 보니 성예도 몹시 힘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오후 3시경, 우여곡절 끝에 하이캠프에 도착하여 텐트 안으로 들어섰는데, 몸이 말 그대로 덜덜덜 떨리고 있다. 이건 뭐지? 지금까지 춥지도 않았고 춥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쿡팀이 전해준 따듯한 복숭아 통조림을 마셨어도 떨림이 멈추지 않아 침낭에 핫팩 여러 개를 발열시켜 넣어놓고 신도 벗지 못한 채 침낭 속으로 들어가 몸을 진정시키려 했으나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얼마나 지쳤는지 그 와중에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12월 20일. 밤 1시. 쿡팀이 전해주는 따듯한 죽 한 그릇으로 잠을 보내고 다시 크렘폰을 신고, 한 손엔 피켈을 들고 앞 뒤로 셀파 한 명씩 그 안에 용봉과 나. 그리고 역시 앞 뒤로 셀파 한 명씩 그 안에 미경과 성예. 이렇게 두 팀을 만들어 1시 30분 여기서 약 2.5 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정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않아서 콧물이 뚝뚝 떨어지고 한 껏 숨을 들이쉬어도 폐에는 겨우 한 줌의 공기만 담겼다. 뭐지? 고산병? 아니면 어제 추위를 느끼지 못한 것과 연관이 있는 건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으니 다리에 피곤이 누적되어 걸음이 무거워지고 급기야는 뒤쪽에 있던 여성팀이 우리를 추월해 지나갔다. 엇? 하이켐프에서 내려가고 싶다는 등 큰 소리로 불평하던 미경은 어찌 저리 잘 올라갈 수 있지? 덩달아 나도 분발해서 열심히 발을 떼었지만, 앞으로 나아가질 않았다. 급기야 나 때문에 진행이 늦는다고 판단을 했는지 두 셀파들이 상의를 한 후, 한 셀파는 용봉과 줄을 잇고 또 다른 셀파는 나와 줄을 이어 각기 진행을 했다. 벌써 용봉의 불빛은 저 높이에 있고, 여성팀의 불빛은 이미 까마득하다. 갈 수 있는 사람 밀어주고 안될 사람은 되돌린다고 하던데 괜히 낙오자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면 보여주마 포기 없는 내 모습을. 하지만 겨우 몇 걸음 옮겼을 뿐인데 숨이 컥컥거릴 정도로 가쁘고 더 이상 발을 뗄 힘도 없다.  오기로 될 일이 아닌 것 같아 한동안 우두커니 서서 되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래 뒤돌아 갈 때 가더라도 오를 수 있는 만큼은 올라갔다가 내려가자는 결심을 세우고 마치 구도자가 삼보일배하듯이 스무 발짝을 걷고 멈추고 또 스무 발짝을 걷고는 쉬고 하면서 조금씩 올라갔다. 오르다 보니 어느새 동쪽 하늘이 붉어지더니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펨바 이야기로는 해가 뜨는 시간 정도에 정상에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정상은 아직도 멀리에 있어 볼 수가 없다. 여기까지가 내 몫일까? 이쯤에서 뒤돌아 가야 하나? 하필이면 요즘 맘고생이 심한 둘째 녀석이 지금 생각이 나는지. 불쑥 오기가 다시 생겼다.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는데 이깟 고통이 뭔 대수라고. 이봐요 셀파 양반 고고고 합시다.

메라 중봉으로 가는 길에 만난 2024.12.20.의 일출

 

삼보일배하는 구도자의 마음 한 자락에라도 닿았는지 어느새 메라 중봉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섰다. 하지만, 아직도 까마득하다. 의기소침하고 있는데 2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펨바의 동생인 셀파 취링이 열심히 응원을 해서 또 스무 발짝의 걸음으로 걷고 또 걷다가 이미 정상을 찍고 중봉 아래에 내려선 우리 대원들과 만났다. 그들 모두가 열성적으로 격려하고 응원을 했지만,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왜냐면 그들과 합류해서 내려가고픈 강력한 유혹을 온 힘을 다해 뿌리쳐야 했기 때문이다. 암튼, 그 유혹을 견뎌내고 다시 정상을 향해 걸었지만, 에너지가 거의 소모된 상태여서 말 그대로 이번엔 진짜로 삼보일배의 방식으로 올라갔다. 그렇게라도 해서 마침내 정상에 올랐지만, 서 있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래서 감동스러웠냐고? 가슴이 벅차 울기라도 했냐고? 천만의 말씀.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아마도 모든 에너지가 소모됐기 때문인 것 같다.

메라피크 중봉에서

 

어쨌든 이제 하산이다. 그런데 희한한 경험을 했다. 여태껏 아무리 힘들었어도 하산할 때만큼은 어렵지 않게 내려왔었는데, 여기서 만큼은 다리에 힘이 받쳐주지 않아서 여러 번 주저앉고는 했다. 하하 참 오를 때와 마찬가지로 내려올 때도 스무 발짝 후에 쉼 한 번하는 주행법이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 괜히 헛웃음만 나왔다. 그렇게 다시 하이캠프로 와서 텐트 속으로 쓰러지듯이 들어가 이미 그 속에서 쉬고 있던 용봉의 무한 관심으로 한참을 편히 쉬고 있다가, 다시 카레로 향했다. 물론, 여전히 씩씩한 우리 대원들과는 달리 아직도 에너지를 충분히 충전하지 못한 나는 그나마 해 떨어지기 전에 간신히 카레에 도착한 것이 다행이었다. 카레에서는 먼저 온 일행들에게서 나의 힘든 산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는지  경신은 내 배낭을 빼앗듯 가져가 대신 메고 식당으로 안내했고 그곳에 있었던 나율 역시 걱정스럽게 진심어린 안부를 물어왔다. 우리 대원들의 따듯함에 울컥한 마음이 살짝 일어서 그것을 숨기려고 과장되게 너스레를 떨면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그렇지만 몸의 컨디션은 좋지 않아서 침실로 들어와서는 룸메 용봉이 준 종합감기약 두 알을 한 입에 털어 넣고 쓰러지듯 잠을 청했다.

 

p.s.  카레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나서야 메라 피크에 다녀온 것이 실감됐다. 나이 때문에 혹시 실패하면 어쩌나 했는데 정상 등정에 성공을 해서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싶다. 그리고 올라간 고산의 높이를 경신했지만 그것보다는 온 에너지를 소진하면서까지 산을 오르고 내려온 기억이 더욱 소중한 자산이 될 듯싶다. 루클라로 뒤돌아가는 길은 온 길을 그대로 되짚어가야 했지만, 워낙 힘이 소진된 관계로 고테까지 내려가 1박을 한 다음, 거기서 헬기를 타고 체트라라를 우회하여 루클라로 갔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