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처럼

설악산 __ 귀때기청봉에서 단풍을 마중하다. 본문

등산

설악산 __ 귀때기청봉에서 단풍을 마중하다.

mangsan_TM 2016. 9. 28. 15:55





2016년 9월 25일(일). 아침 7시 30분.

산을 잘 알고 산행의 묘미 또한 잘 버무리기로 소문난 산악회 M. 벌써 세번 째 만남을 복정에서 가졌다.

하지만 말 그대로 미니인 미니버스로 이동을 하게되어 무릎 한 번 제대로 뻗질 못해서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게다가 날씨는 꾸물거려 시야 마저 흐릿하다.

벌써 설악에 단풍이 온다는 소식으로 귀때기청봉으로 향하는 중인데 제대로 단풍이나 볼 수 있을런지...


그 우려는 장수대를 한참 지나 적당한 공터에 차를 대고 자양2교 옆을 스쳐 원시림을 헤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없어졌다.

이팔 청춘의 발그레한 볼새깔이 그럴까? 이제 막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이 앞으로의 여정에 부푼 기대를 안기우고 있다.






상투바위골로 내려서니 물소리가 맑고 힘이 있다.

깨끗한 물을 담은 비취빛 물웅덩이에는 선녀가 내려와 목욕해도 충분하단 엉뚱한 생각이 들게 하고

바위 틈으로 흐르는 물줄기는 어린 아기가 쉬를 하는 것만 같아 절로 미소가 인다. 얼마 전 가졌던 불쾌한 감정은 어디로 갔는지..







그 상투바위골을 거슬러 오르면 각양각색의 폭포와 만나게 되는데 말 그대로 비경이다.

앙증맞은 작은 폭포가 있는가 하면 웅장한 폭포도 있어 다양한 크기의 폭포를 감상할 수 있다.

하지만 물길에 노출됐던 바위라서 바위 표면이 많이 미끄럽고 때론 아찔한 높이를 지닌 폭포도 있어 오르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손으로 쓰다듬든지 아니면 매달리면서 폭포와 밀당까지 해야만 했다. 그러기를 몇 번 했을까?








바위로 된 봉우리 세 개가 나란히 눈에 확 띄었다. 그 중 하나가 상투를 튼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

아마도 저 봉우리 꼭대기가 이 골짜기에 이름을 준 상투바위인 모양이다. (하지만, 나중에 지도를 보니 상투바위라는 글자는 다른 곳에 있었다)





모양도 그럴듯하니 이왕 그 바위를 상투바위라 해야겠다.

골은 상투바위로 가는 것과 그 오른쪽으로 가는 Y자로 갈린다.

그 중 오른쪽 골을 따라서 오르다 보면 물줄기가 힘을 잃고 소리마저 약해져 돌 틈으로 숨어들어간 부분 왼편으로 산등성이로 가는 길이 열린다.


그 길은 많은 관목들과 간간히 큰 나무들 밑으로 지나지만, 큰 사면을 가지고 있어 조금 오르니 벌써 숨이 차다.

주위를 둘러보니 많은 나무들이 잎을 물들이든지 열매를 떨구든지 하여 가을로 가고 있다.

무척 덥고 길기만 했던 지난 여름, 가을을 의심하던 그 때에 자연은 이미 가을을 준비하고 있었다. 때에 맞추어 나는 준비를 잘 하고 있느걸까?






서북능선 장수대로 향하는 길과 만났다.

어느새 개인 하늘은 상투바위골과 능선길이 만나는 랜드마크인 주목나무 위에서 앞으로 가야할 귀때기청봉 위에서 파랗게 날고 있다.







귀때기청봉을 얼마 남겨놓지 않고 뒤돌아본다.

상투바위와 세 봉우리가 바로 아래에 있고 그 앞 골을 따라 한참 단풍이 채색을 하려든다.

상투바위 뒷쪽 저 멀리에는 단풍의 절정을 맞이하고자 하는 가리봉과 주걱봉이 가까이 보이고 대승령 쪽 멀리에 있는 안산 역시 가까이 보였다.





와우~~ 귀때기청봉(1577m) 정상이다.

아래에는 말갈기 같은 관목들이 형형색색 물들이고 있고 저 멀리에는 대청봉 중청봉이 보인다.

그 아래 소청이 보이고 좀 더 아래로 봉정암. 그 옆으로 시작되는 용아능선 및 바위군들이 자신 들의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단풍은 이미와 있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이리저리 눈인사를 건내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기 바쁘다.







충분히 인사를 나누고 이제는 내려가야 할 도둑바위골을 살펴 본다.

너덜바위를 기준으로 앞쪽 뾰족 나온 바위 봉우리 왼편이 도둑바위골이다. 골 왼편에 나 있는 큰 산줄기 바로 넘어에 한계령삼거리가 있다.





도둑바위골. 아주 오래 전부터 인적이 없어 도둑들 만이 들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사람의 흔적이 비교적 없다.

더불어 단풍 또한 더 곱고 화려한 것 같다.









단지, 모래흙에다 흔하게 뒹구는 도토리류가 깔려 있는 길이 큰 경사를 이루고 있는 곳에서는 무척 조심스럽게 내려와야 했다.

자칫 미끄러지기라도 한다면 이 신비롭고 아름다운 또다른 세계를 한동안 볼 수 없을 테니까..





길은 도처에 있는 원시를 지난다.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죽음 위에 생명이 있고, 때론 척박한 환경에서도 치열하게 삶을 이어가는 생명들이 보인다.

과연, 나는 그들 만큼의 자연을 영위하고 있는 것일까?









물소리가 제법 커지고 골에 흐르는 물도 꽤 많아질 즈음에 아주 큰 바위와 만났다. 이 골에 이름을 준 도둑바위다.

바위 밑쪽에 엎드려서 간신히 들어갈 수 있는 구멍이 있던데, 안을 살펴보니 어른 몇명이 허리를 쭉 펴고 앉을 수 있는 깊이가 있다.

주전골은 도둑들이 화폐를 주조한대서 유래됐으니 이 도둑 저 도둑을 모두 품을 수 있는 설악의 품을 새삼 느껴볼 수 있었다.





도둑바위에서 조금 내려오니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나뭇잎 저 너머를 살펴보니 도로와 그의 가드레일이 설핏 보인다. 언제 또 이 골짜기와 만날 수 있으려나 아쉬움이 남지만

때가 되면 앞의 계절을 준비하는 세월처럼 나도 내일 출근 준비를 해야겠다.





대략 7km 거리인 듯 하다. 볼 것이 많고 험한 곳도 있어서 모두 포함 7시간이 걸린 산행이었다.


<설악산 귀때기청봉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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