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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설악산 __ 용의 어금니를 건드리다. 본문
<용아 4봉에서 본 공룡능선. 왼족부터 마등령 나한봉 큰새봉(중앙 봉우리2개) 1275봉 >
2017년 5월 27일. 약 4km에 이르는 설악산 용아장성 위를 8시간 반 동안 걷다.
<설악산 등산지도>
설악산 서북능선과 공룡능선 사이 은밀한 곳에서는 무려 천만년이 넘게 잠을 자고 있는 용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확인하고픈 강렬한 욕망이 아주 깜깜한 새벽 2시 20분 경에 여기 강원도 인제 용대리에 있는 백담사로 가는 길 입구에 나를 서 있게 한다.
2시 30분. 간단히 몸을 풀고 주변으론 오직 어둠 뿐인 백담사로 향하는 길에 오른다. 백담사까지는 무려 7km 길. 오직 용의 곁으로 가까이 가고자 하는 의지때문인지 발검음이 씩씩하다. 단지, 헤드랜턴의 불빛으로 놀란 백담계곡의 물소리만 간간히 깊은 소리를 낼 뿐, 사위가 조용하니 절로 철학이 인다.
백담사에 도착했다. 얼마나 씩씩한 걸음이었는지 1시간도 채 안되어 도착한 시간이다. 아직도 하늘엔 수많은 별들이 찬란한 빛줄기를 내리고 있지만(사진으로 표현이 안되어 아쉽기만 하다), 만물을 깨우는 백담사의 범종소리가 은은히 들려오고 있다.
견고했던 어둠은 백담사를 지나 영시암에 들어서서야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해서
수렴동 계곡에 들어서서야 비로소 옅어졌다.
그리고, 수렴동대피소를 지난 잠시 후, 왼쪽 능선으로 스며들고, 헉헉거리며 등성에 올라선 뒤에서야 햇살을 느낄 수 있었다.
능선을 조금 걷다 보니 턱 하고 앞을 막아선 바위벽이 보인다. 옥녀봉으로 오르는 관문이란다. 드디어 용아능선에 올랐다는 느낌이 왔다.
이번 산행은 가고픈 산이 있을 때마다 찾던 산악회N과 함께 하고 있다.
그곳에서 항상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는 그분의 배려로 줄을 잡고 힘차게 옥녀봉으로 올랐다.
미리 말하자면, 용아능선 가는 내내 위험지대가 나타나곤 했다. 그때마다 줄을 내려주고 리딩하신 그분께 이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옥녀봉에 오르니 이미 밝은 햇살이 그득하고, 주위를 둘러보아 보이는 모두가 그림으로 펼쳐진다.
<내설악 만경대>
옥녀봉에서 앞을 보니 그 유명한 뜀바위며 개구멍바위가 있는 산줄기가 보이고 그 뒤로 우뚝 용아 제1봉이 솟구쳐 있다.
산행 당시에는 힘들게 오르고 아슬아슬 위험구간을 지나느라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몰랐는데 사진을 정리하면서 봉우리를 인지할 수 있었다.
<용아장성능선 지도._자료출처 : 다음카페 오색채운>.
용아능선길은 어디 한군데 평탄한데가 없었다. 그러니 쉬지않고 걸어 지치지는 않았지만, 기어오르고 주저앉아 내리고 하다 보니 힘이 든다.
그럴 땐, 지체없이 쉬어주곤 다시 길을 걸었다.
<뜀바위와 개구멍바위가 있는 암릉길. 손가락 두개와 같은 바위가 개구멍방위>.
뜀바위. 뛰려들면 못뛸 것도 없지만, 굳이 뛰고 싶지는 않아서 왼쪽 아래쪽으로 우회를 했다.
보다 젊은 날에는 뛰어보는 것이 정답인 줄 알았지만(사실, 그게 정답은 정답이다) 보다 넓은 것을 보고 즐기다 보니 답 자체가 무척 넓어진 것 같다.
혹시, 나도 정해진 답을 고집한다면, 이 뜀바위 뒤편에서 영면하고 계신 분과 친구가 될 수도 있다는 엉뚱한 생각도 들고....
길이 온통 철조망으로 둘려있다. 이곳이 얼마나 위험하면 자연경관을 몹시 훼손하면서까지 저리 해놓았을까?
경각심이 절로 일어서 개구멍바위로 가는 직벽에서도 좁은 벼랑길에서도 긴장을 놓지 앟았다.
개구멍바위. 여전히 그분은 위험구간을 안전히 이동시키느라 힘을 쏟고 있다. 고백하건데, 나 혼자는 물론, 여러사람과도 자체적으론 이곳으로 올 수 없을 것 같다.
줄을 허리에 두르고 또 손에도 잡고 절대로 밑은 보지도 않고 간신히 개구멍을 통과하여 내친 김에 1봉까지 올랐다.
용아 제1봉. 발아래로 옥녀봉 그리고 조금 올라와 뜀바위와 비석이 있는 바위가 조망된다. 가슴이 툭 트이는 것만 같다.
날씨는 왜이리 좋은지 미세먼지로 여지껏 불편해 하던 눈이 호강한다. 오른쪽으로 서북능선 귀때기청봉과 흰구름이 보이고.
멀리 서북능선의 마지막 용솟음인 안산마저 마치 도약하려는 개구리 머리모양으로 먼 마루금 위에 쏙 나와있는 모습이 보인다.
앞쪽으론, 소청 중청 끝청이 흰구름 아래 평화롭게 보인다.
이제 1봉을 지나고..2봉까지는 조금 순탄하다고할까?
2봉에서 뒤돌아 보니, 어렵게 오른 옥녀봉과 1봉이 나를 언제 위협했나 쉽게 작아보인다.
와우 날씨 정말 좋다!! 이 날씨 하나만으로도 복받은 기분. 아니 분명 복을 많이 받고 있다. 파란하늘과 흰구름 그 아래 중청의 모습까지 절로 감탄이 인다.
왼쪽으론 공룡능선이 계속 따라온다. 마등령 그 아래로 오세암(사진으론 잘 표현이 안돼서 실망스럽다) 마루금엔 여전히 나한봉 큰새봉 그리고 1275봉.
2봉에서 3봉으로 가는 길 곳곳은 모두가 포토존인가 보다. 귀때기청봉과 곡백운골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다.
3봉을 코 앞에 두니 멀리 중청이 가까워지고.
길 옆 고사목도 외계의 생명체인양 하면서 길을 따른다.
경치가 좋다보니 오르는데 힘듬을 잊었나 보다. 엉겹결에 3봉에 올랐지만, 몸은 고단했던지.. 잠시 쉬다가 4봉으로 향했다.
벼랑암릉길 끝으로 4봉이 보이고, 그 왼편으로는 오르지 못하는 1110봉이 벼랑길 라인으로 5봉, 그 뒷쪽 배경이 소청 그 옆으로 중청.
어마무시한 벼랑길 위를 지나고 험난한 바윗길을 오르지만, 끝내 4봉을 가기에는 역부족이다.
긴 줄을 잡고서야 간신히 4봉에 오른다'.
아마도 용아능선 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이 이 4봉인 것 같다. 백운동 구곡담은 물론이고
정상부에 널직한 평탄면이 있어 쉬기에도 좋다.
물론, 여전히 공룡능선은 왼편에서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감상을 핑계로 충분히 쉬고 다시 5봉을로 향했다. 이제는 협곡을 오르거나 바윗길 등은 어느 새 익숙한 몸짓이 된 듯 하다.
5봉으로 가는 길은 즐겁기만 하다. 그 유명한 손가락바위(건들거리며 피스를 외치는 랲퍼의 손짓이 왜 생각나는지)가 있고 어느 큰 동물의 등뼈와 같은 벼랑길도 있어 지루할 틈이 없기 때문일 테다.
5봉에 올라 뒤돌아 보니 왜 용아라 명명했는지 조금이나마 이해가 된다.
다시 이제는 익숙해진 바위를 오르고 절벽에 매달리며 6봉으로 향했고, 6봉을 지나
또 벼랑길 위로 걸으며 7봉으로 향한다.
이 구간에도 그 유명한 바위가 있다. 용머리바위 __ 바위 전체를 보면 용의 머리 같기는 하지만, 바위 위쪽을 보면 두더쥐를 닮은 괴생명체가 하늘을 향해 간절히 무언가를 염원하는 것만 같다. 용머리 바위 뒤로는 갈라진 바위봉이 있는데 그 왼편이 7봉이라 하는 것 같다.
그 갈라진 틈으로 길이 있다.
7봉엔 오르지 못하고 틈새길을 자면
고래등바위가 나온다.
<지금껏 지나온 봉우리._자료출처 : 다음카페 오색채운>.
고래등바위를 지나고 천왕문을 지나면,
8봉이 나오는데 7봉과 마찬가지로 8봉 정상은 생략한 중간에 있는 직벽을 타고 넘는 길이 있다.
그 길 너머 역시 절벽길이어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다.
이제 삼거리. 9봉을 들르고 봉정암으로 갈 것인가 아님 막바로 하산할 것인가?
여러사람의 눈에 띄이는 것은 개인적으로 싫어서 답은 정해져 있었다. 막바로 하산을 결정한다. 길은 원시적이고 마사토가 많아 주의하지 않을 경우엔 넘어지기 쉬웠다. 잔돌 역시 많이 깔려 있어 낙석이 있을까 신경이 날카롭게 서곤 했다.
오른 것에 비해 허무할 정도로 하산은 빨랐다. 금새 봉정암에서 백담사로 이어지는 구곡담길로 접어들었고 오고가는 많은 사람들 틈에 녹아서 백담사로 향한다. 땀내 몹시 독할텐데도 뭔 배짱인지 개의치 않았다. 단지, 뭔가 이루었다는 뿌듯함을 되새길뿐..
백담사에서 용대리로 가는 마을버스는 오후 5시로 운행을 중지한다고 했다. 남은 시간이 기껏해야 1시간 50분 남짓 한 것 같다. 남은 거리가 9km 는 더 될텐데.. 부지런히 길을 걷다보니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는 것 같다. 빠른걸음을 걷는 것은 무리..어쩌지..? 길 가는 사람께 물어보니 오후 6시가 막차라 한다. 쿡쿡 혼자 실없이 웃으며 느긋히 걸어 5시 30분 발 용대리 버스에 올랐다.
대략 26km의 15시간 산행으로 그렇게 갈망하던 설악산 용의 어금니를 더듬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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