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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용문산 백운봉 __ 가을의 끝자락을 놓다. 본문
2017년 11월 17일. 쾌청하지만 몹시 추운날
코스 : 연수리 선운사 -->백운암 -->백운봉 -->장군봉 --> 감미봉 --> 선운사. 원점회귀
사진 : sony cyber shot & galaxy note8
먼저 지난 16일 포항시민들 중 지진으로 피해를 당한 분들께 위로를 전한다.
분당인 여기에서도 어릴적 나무 위에 올라 바람에 흔들거리던 그 느낌을 받았는데..
포항에 사시는 분들의 느낌이 오죽할까.
하지만, 세상의 이치가 그럴까? 그 분들의 불행이 내게는 예기치 않은 하루의 휴가를 주게 되었으니.
기분이 참으로 묘하다. 허투로 보내기엔 의미가 없을 듯 해서 바지런히 짐을 꾸렸다. 내일은 용문산에 다녀올 생각이다.
2017년 11월 17일. 원래대로라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루는 날이지만
어제 포항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규모 5.4)으로 인해 시험일이 일주일 동안 순연되었다.
아침 8시. 일찍 서두른 덕에 여기 용문면 연수2리에 도착한 시각이다.
올 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고 자동차 안의 래디오에선 줄곧 비명을 지르고 있지만 (실제로 바깥 온도를 기록하는 자동차 계기판에는 -6이 쓰여 있다.)
쾌청한 날씨로 오늘 걸어야 할 백운봉에서 용문산에 이르는 능선길이 아주 가까이 보여진다.
선운사.
부근에 주차를 하고 산행 날머리를 찾을 요량으로 사찰을 돌아다녔지만
감미봉에서 내리는 길을 찾아볼 수 없다.
<우뚝 솟은 백운봉과 선운사 대웅전>
어쩔 수 없이 백운암과 상원사가 갈리는 삼거리로 내려와서 백운암을 향하면서 시계를 보니 아침 8시 14분이다.
수득골에서 발원한 개울을 따라 난 시멘트 포장길. 그 개울 맞은 편엔 나름 개성을 살린 전원주택들
그리고 잠시 뒤 나타나는 넓직한 비포장 도로(예전엔 신작로라 불리웠을). 그 길을 30분 정도 걸어 올라갔을까?
도로 중간으로 차단기가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백운암은 그 차단기 너머에 있다는 이웃님들의 조언대로 망설이지 않고 넘어서니
백운암이 갑작스럽게 나타났다.
급할 것 없으니 아직 가을을 잡고 있는 백운암을 둘러 봤다.
사찰 뒤쪽으로 웅장하게 펄쳐진 용문산 산줄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이제 백운암을 마주하고 왼쪽으로 난 수득골로 접어든다.
수득골 오른쪽으로 길게 늘어선 길 주변엔 많은 나무들이 벌써 겨울 채비를 갖췄고
멀리 백운봉은 햇빛으로 치장을 하여 제 스스로 반짝이고 있다.
이젠 정말 가을이 갔나 보다.
나무들은 그 싱싱하고 화려했던 많은 잎들을 떨구었거나
이제 조만간 바람을 빌어 그 잎이 어떤 삶을 가졌던 떨구어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이 반드시 배워야 할 자연의 덕목은 아닐지..
지금이 갈수기 임에도 계곡엔 많은 물이 흐르고 있다.
그러니 한 여름엔 무척이나 시원한 계곡이 될 것으로 확신이 든다.
다음 여름엔 지금 가는 길 반대방향으로 걸어 이 계곡에서 땀을 식히는 상상을 해본다.
많은 나무들이 떨군 낙엽들은 이미 길을 덮고 있어서 그 길을 찾는데 많은 시간을 들여야 했다.
엉뚱한 곳에서 헤메이기도 해서 번번히 뒤돌아오기를 여러번 반복한다.
지금의 나야 그 또한 삶의 한 과정으로 즐길 수 있지만
한참 전엔 그것들이 무척이나 손해보는 느낌이어서 많이 속상해 하거나 남을 원망 하거나 했던 것 같다.
길이 희미하거나 보이지 않을 땐, 주위를 보다 여유롭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 가까운 곳에 길을 가르쳐주는 이정표를 발견할 수 있을테니까.
사람도 매 한가지라서 내가 길을 잃고 헤매일 때 오히려 침착히 주변을 살펴보면
분명히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 같은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럽고 불안해 할 때
익숙한 무언가는 내게 안도와 확신을 가져다 준다. 이게 길이겠지 하면서 걸은 그 끝에서 본 벤취가 그랬고 옛 선배들의 숯가마터 역시 그랬다.
앞선 사람도 없고 길도 확신이 들지 않은 그 때, 눈 앞으로 다가선 밧줄 구간은 내게 기쁨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밧줄의 용도가 가이드라인이 기본이지만 무엇보다도 아주 가파르고 위험한 곳에 설치된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아직도 5부능선.
하지만 오르는 틈틈히 제자리에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쉴 정도로 몹시 가파르다.
그래도 끝은 있는 법. 저기 보이는 형제약수터에서 분명 끝을 보여주라 주문을 외우며 올라섰다.
형제약수.
큰 바위 밑으로 가늘긴 하지만 끊이지 않고 물이 나오고 있었다.
이런 갈수기에 그것도 바위 틈에서 이정도의 물을 주다니 약수로 충분한 믿음이 간다.
어? 그런데 돌의 놓임이 예사롭지 않은걸..? 혹 성터?
백운봉 가는 길은 형제우물이란 표지석 뒷쪽으로 나 있지만 빨갛고 큰 글씨로 위험이라고 쓰여 있어서 가기를 주저했지만
돌들이 곧 흘러내릴듯한 너덜지대를 옆에 두고 가파르게 오르는 것 이외에는 그다지 위험하지는 않다.
드디어 백운봉과 장군봉으로 갈리는 갈림길.
백운봉까지는 600m 정도? 많은 나무계단 또는 철계단을 올라 정상에 갔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야 한다.
드디어 한국의 마테호른이라는 백운봉 정상에 섰다.
10시 35분. 오르기 시작해서 2시간 20분이 지났나 보다. 쾌청한 날씨는 용문산 줄기를 깨끗하게 보여주고
누군가의 염원이 담긴 통일암을 밝게 비추어 나 또한 그 염원이 힘을 넣는다.
오르는 내내 사람이라곤 볼 수 없었는데
때마침 새수골에서 올라오신 선객 두 분이 계셔서 얼마 전에 구입한 갤럭시 노트8로 인증샷을 남길 수 있었다.
가까이는 용문산휴양림으로 가는 줄기가 보이고 멀리 한강줄기를 따라 양평읍이 조망되고
산행을 시작한 연수리와 자세히는 선운사까지 조망이되니 그져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
가지고 온 사과와 대추를 먹으면서 충분히 쉰 다음
장군봉을 바라봤다. 가깝게 운필암이 보이고 가섭봉 못미쳐에 장군봉도 보인다.
눈 앞에 보이니 금새라도 달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장군봉으로 가는 길은 옥천 쪽과 연수리 쪽을 사면으로 둔 능선길이라서
골바람이 낙엽을 쌓아 둬서 그것들을 헤쳐나가는게 불편했다.
더욱이 가파르게 내리는 길에선 자칫 발목을 삐끗하거나 미끄러질 수 있어서 무척 조심스럽게 내려서야만 했다.
운필암.
그 곳 정상엔 별다른 표식이 없지만 사방을 훤히 바라볼 수 있는 조망터가 데크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 곳에서는 지금까지 내려 온
백운봉을 뒤돌아 바라보는 풍경이 최고로 멋진 것 같다.
함왕봉 가는 능선길엔 간간히 돌무더기들을 볼 수 있었는데..
어느 구간에서는 마치 성곽처럼 보이는 돌무더기도 보였다.
혹시나 해서 올라갔더니 분명한 성곽이다. 뭐지? 후에 공부한 결과로는 이곳이 함왕성터라고 했다.
'함왕(咸王)'은 누구인가. 1,000년 넘는 시간 동안 산 이름으로 남았으니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함왕은 삼한시대 양근(양평)함씨 시조라는 설과 고려 개국공신인 함규라는 설이 있다. 함씨 시조가 함왕혈, 즉 계곡의 구멍에서 났다는 애기는 설화이기에 검증이 어렵다. 반면 함규와 함혁에 대한 기록은 남아있다. 후삼국 군웅할거 시대, 함규는 양평의 강력한 세력을 구축한 호족이었다. 그는 영리했고 자신만만한 야심가였다. 혼란의 시대, 왕건을 지원한 그의 선택은 옳았다. 고려의 개국 공신으로 지금의 국무총리에 해ㅏㄷㅇ하는 대광을 역임했으며 왕족인 왕씨 성을 하사 받아 왕규라 불렸다. [출처:조선닷컴]
함왕봉도 그곳에서 유래가 되었지만
부귀영화와 권력 또한 영구할 수 없듯이 정상은 그 흔한 정상석 하나 없이 이정목 기둥 한켠에 누군가의 아쉬움이 묻은 함왕봉이란 글자가 대신하고 있었다.
조금 전부터 출출하다 못해 속이 쓰리기까지 하더니
벌써 12시 15분이 지나고 있다. 애초에 장군봉에서 점심을 하려 했지만
굳이 그럴필요까지야.. 적당한 곳에 배낭을 내려놓고 점심을 가졌다.
뜨거운 국물이 있는 컵라면을 먹었지만
땀이 식자마자 한기가 돈다. 저 만치 응달에는 말 그대로 퍼런 서릿발이 눈에 띤다.
부랴부랴 두터운 보온점퍼를 걸치고 보온병에 담아왔지만 지금은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고는 다시 길을 나섰다.
장군봉까지는 능선길이라서 마치 여느 동네 뒷산처럼 순하다.
그래도 오르고 내림이 있어 몸을 뎁히는데 충분하다. 오후 1시 7분. 장군봉에 도착했다.
지난 여름 상원사에서 이곳으로 올라 가섭봉으로 향했는데..이제는 정상석 오른쪽으로 난 상원사 가는 길로 내려섰다.
한여름 울창한 나뭇잎들과 안개로 인해 오르는 내내 볼수 없었던 백운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여전히 보이고 있다.
하지만 내리는 길 자체가 거칠고 미끄러운 바윗길이라서
맘 놓고 주변을 감상할 수 없다.
그래도 왼쪽 저아래로 상원사가 보이고
눈 앞 가운데로 잠시 뒤 걸어내려가야 할 감미봉 능선이 시원스럽게 보여서 왠지 상쾌한 느낌이 온다.
감미봉으로 가는 길은 정규등로에는 없던데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정규등로가 아닌 만큼 잘 찾아 들어서야 하는데, 예전엔 분명 이정목이었을 나무기둥이 그 길의 문을 대신하고 있다.
감미봉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내려온 길과 달리 유순하고 부드러워 많은 생각과 함께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표식이 없어 어느 곳이 감미봉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이곳이면 충분히 감미봉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곳에 의미를 부여하곤 길을 재촉했다.
정작, 감미봉의 랜드마크는 여기 헬기장일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에선 힘들게 오른 골짜기와 능선 그리고 그 끝의 백운봉.
다시 내려와 걸은 함왕봉과 장군봉 등을 시원스레 볼 수 있고
역시 감미봉 뒷쪽으로 용문산의 부드럽고 힘있는 능선이 한눈으로 조망되기 때문이다.
한동안 감상하고 내려서는데 길이 보이지 않는다.
아까 내려오면서 봐 두었던 능선 모양을 되살리곤 진행방향으로 직진했다.
두터운 낙엽들 위로 길이다 싶으면 걸어 내려오니 곧 임도가 나오고
그 임도 역시 건너면서 직진을 하니
잘 가꾸어진 어느 집안의 가족묘원이 나왔다.
지금까지 잘 내려온 것을 스스로 칭찬하면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니 확실한 길이 나왔고
그 길 왼편으로 선운사의 산신각이 멋들어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다 내려왔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아침에 그렇게 손이 시러운 추위더니 지금은 포근한 기온이 도는 것 같다.
오후 2시 50분? 자동차 시트에 앉으니 몹시 차갑다.
<산행을 마치면서 날머리를 뒤돌아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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