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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처럼
설악산 귀때기청봉 _ 원효의 깨달음을 엿보다. 본문
2021년 9월 12일(일). 설악산 귀때기청봉에 다녀왔다.
장수대에서 한계령쪽으로 조금 올라가다 차를 두고
상투바위골 - 귀때기청봉 - 도둑바위골로 내려온 다음 44번 도로를 따라서 원점회귀를 했다.
8시 50분. 상투바위골로 들어선다. 혹시...단풍이 있을까? 전혀 ~~
첫 번째 폭포에 도착. 굉음소리. 많은 수량 만큼이나 깊은 울림소리를 내고 있었다.
2016년 9월 25일의 그날처럼 오늘도 산악회MTR의 발자취를 부지런히 쫒고 있다.
계곡엔 역시 많은 물이 흘러야 좋은 것 같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올라가니
확실히 힘든 것을 모르겠다. 게다가 얼마나 맑고 투명한지...
자연스럽게 컵에 물을 그득 담아 벌컥 들이키곤 했다. 와우~~ 물맛 쥑이네!
두 번째 폭포. 경사가 조금 있지만 손잡을 곳과 발 디딜 곳이 있어서
조심스럽게 바위와 밀착해서 폭포 중단에 올라서고 상단은 리더께서 내린 로프의 은총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지는 계곡은 외계의 그 어느 행성을 생각케 하니
마치 그곳을 탐색하는 우주인이 된 듯 흥미롭고도 즐겁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거나 미끄러진다면 제법 위험한 긴 낙하를 경험할 테지만
그것 보다는 비단물줄기를 내리는 저 너머엔 뭐가 있는 지에 대한 궁금함이 더 크니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는 것에 열중할 뿐이다. 물론, 곳곳에 깃든 절경에
와우~~ 혹은 야~~ 하는 리엑션은 선택사항.
세 번째 폭포. 이제서야 5년 전에 만들어진 일부의 기억이 돌아온다.
ㅋㅋ 이 거대한 폭포절벽을 바짝 긴장을 한 채 올랐었던 기억.
5년 전 그 때의 모습을 찾아보니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 세월의 흐름을
나는 이렇게 몸에 담고 있지만 저기 보이는 바위봉우리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오늘 오르는 길 중, 아마도 가장 힘든 구간의 이 길을 리더가 주신
굵은 로프에 의지해서 올라서고, 그 뿌듯함을
이곳 저곳 둘러보며 흐르는 물에 차분히 녹여내고 있다.
Y자 계곡 삼거리에 도착을 했다. 이곳에선 왼쪽 방향으로 난 계곡 뒷쪽으로 나란히
여러개의 바위봉우리가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 중 한 봉우리의 모습이 마치
옛 선비들이 틀어올린 상투머리처럼 보인다. 그래서 실제는 이와
반대편에 있는 상투바위를 개인적으로 이 봉우리에 붙여 놓았다. ^^
상투바위가 멋지게 보이는 장소에서 점심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가져온 물은 죄다 쏟아내고
시원한 계곡물로 물병에 담고 먹고 한다. 정말이지 물맛이 엄청 좋다.
그리곤 다시 걷는 Y계곡의 오른 쪽 길. 마치 처음 걷는 걸음처럼 가벼운 발걸음.
그래서 일까? 주변이 보다 넓고 자세히 보인다. 그래서 찾았다.
'자연도 사랑을 알고 그를 표시한다'는 표식을...
그러다가 보게 된 물웅덩이에 담겨있는 멧돼지의 사체. 물 밖으로 꺼내어 물가 멀리로 보낼 때
맡게 된 그것이 부패된 지독한 냄새. 으악~~ 저것이 담겼던 물을 계속해서 먹었던 거야?
갑자기 원효대사의 깨달음이 생각난다. 일체유심조라...
그래서 그렇게 물맛이 좋았구나. 맛있었으면 된거지. 이미 땅에 정화된 물인데 뭐. 중얼중얼
일체유심조를 외우면서 또는 성급히 온 단풍과 눈맞춤도 하면서 계속 오르는 것에 열중한다.
마침내 건계곡이 나오고 능선이 가깝게 보이는 곳에 도착을 했다. 그렇지만 직진.
이제 숲으로 들어서면서 바위 틈으로 나오는 찬 바람에 퍼뜩 돌아오는 5년 전의 기억의 편린.
맞다. 이곳으로 이렇게 가파른 숲길을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오르면
짜잔~~ 하듯이 만나는 서북능선 주등산로. 맞다. 5년 전 그때도 이곳에서 한숨 돌렸던 곳.
이 꽃은 뭘까? 잎을 조금 떼어내어 손가락으로 비벼대고 냄새를 맡아 보니
박하향이 난다. 산박하꽃일까? 박하향의 기운을 빌어
서북능선 주능선을 따라 귀때기청봉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길 오른쪽 아래로는
지금까지 걸어온 상투바윗골과 그 뒤 병풍처럼 세워진 가리봉산의 모습이 보였다.
오르던 걸음 잠시 멈추고 뒤돌아 보니
멀리 안산까지 이어진 서북능선의 모습이 장쾌하게 펼쳐 보인다.
이제 정상까지 400미터. 보이기엔 가깝지만
제법 경사가 있는 곳이라서 멈추고 뒤돌아서길 반복한다.
멋진 풍경도 볼 수 있고 쉴 수도 있고. 이런 길을 빨리 오르는 것에만 왜 몰두 했었을까? ㅋㅋㅋ
올핸 마가목이 풍년인가 보다. 보이는 곳마다 빨간 열매들이 풍성하게 달려있어서
마치 단풍 같이 산 위의 많은 곳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갈길이 멀다. 더욱이 그 유명한 바위 너덜길.
그래서 길 주변에 흔하게 꽃을 피운, 그렇지만 아래에선 보기 귀한
구절초와 쑥부쟁이에게 그 고단함을 덜어내곤 해서
정상에 가까이 갔다. 이곳에선 대청봉과 용아능선이 멋지게 조망되는 곳인데
지금은 구름들이 활공 연습 중이다.
워낙 산을 즐기고 풍경을 만끽하면서 오른 산행이라서 시간이 큰 의미는 없지만 그래도
현재 시간은 표시하고 싶었다. 오후 2시 26분. 한 껏 지금을 즐기자. ♬~
귀때기청봉의 시그니쳐인 이정목과도 모처럼 포즈를 잡고 한 껏 여유와 놀아주는데...
그런데... 날파리가 많아도 너무 많다. 그래서 서둘러
정상을 벗어나 앞이 훤히 열려있는 곳으로 가서 쉬기로 했다.
역광이라서 그 풍경을 고스란히 담아낼 순 없었지만
활공중인 구름과 그 아래의 멋스러운 가리봉산을 음미하면서 충분히 쉰 후
한계령쪽으로 난 길 위에 다시 오른다.
광활한 산줄기도 좋지만 역동적으로 활공중인 흰구름을 보는 것은 또 다른 맛이다.
한계령삼거리에 도달하기 전, 오른 쪽 바위 너덜길로 내려 섰다. 왜냐하면
그 곳이 도둑바위골로 들어서는 입구이니까. 상투바위골과는 달리
유순한 길로 이어지지만 아래 쪽에선 꽤 까다로운 비탈길도 종종 나온다.
가끔씩 귀하디 귀한 금강초롱꽃이며 노루궁뎅이(버섯)도 볼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다. 게다가
자연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해서
길이 유실되어 위험한 곳도 있었다. 위험으로 치면 줄을 의지해야만 하는 곳도 있지만
발 디딜 곳이 눈에 뜨여 보다 쉽게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다 만난 집채만한 바위. 이 골의 이름을 준 도둑바위다.
전설에 이르길 이 바위 아랫쪽에 있는 굴이 장정 네댓 명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도둑들이 그들의 일을 마치고는 이곳에서 거주했댄다.
도둑바위를 지나 한적한 숲을 지나 아직도
원시성을 지닌 숲을 지나니 자동차 소리가 들린다. 44번 도로가 보였다.
오후 5시 20분. 도로에 내려 섰다.
장수대에서 한계령을 거쳐 오색으로 이어지는 44번 도로.
장수대 위쪽, 차가 있는 곳까지는 대략 1.5km내지 2km 정도. 기분 좋게 걸었던 오늘의
길을 반추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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